명품 트레킹 | 아픈 역사 보듬어 새로 태어난 치유의 숲길
명품 트레킹 | 아픈 역사 보듬어 새로 태어난 치유의 숲길
  • 글 사진 박성용 기자
  • 승인 2013.10.0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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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대티골…아랫대티~옛 31번국도~칠밭목~윗대티 10.7km

▲ 일제가 전쟁 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었던 옛 31번 국도가 트레킹 코스로 재탄생했다.

모든 생애는 상처를 갖고 있다. 사람이든, 축생이든, 식물이든 주어진 일생 동안 삶의 나이테에는 티눈 같은 옹이들이 박혀 있다. 길도 마찬가지다. 아픈 역사가 남긴 흔적 중에 길은 가장 오랫동안 기억된다. 옛 31번 국도. 영양군 일월면과 봉화군 재산면을 잇는 20km에 달하는 이 도로는 일제가 일월산에서 캐낸 광물을 봉화 장군광업소로 옮기기 위해 만들었다. 일제가 마을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시켜 닦은 길이기 때문에 ‘수탈의 길’로 통한다. 해방 이후 버려졌던 이 길은 60년대 들어 일월산 지역의 국유림 산판 작업이 활기를 띠면서 다시 분주해졌다.

▲ 쭉쭉 뻗은 금강송이 많은 대티골 숲길.

▲ 옛 국도길 중간에 일제가 세운 이정표가 남아 있다.

한국전쟁 때 돌아다녔던 일명 ‘제무시’로 불렀던 GM트럭이 나무들을 가득 싣고 이 길을 오르내렸다. 그러다 15년 전 새 국도가 뚫리면서 이 길은 잊혀진 임도로 남아 있다가 최근 둘레길 코스인 ‘외씨버선길’로 거듭났다. 김영환씨(일월면 문암리)는 “일제 때는 빼앗기만 했어. 많은 사연들이 있는 도로야. 해방 이후에는 나무를 가져가는 대신 돈을 돌려주었으니 역할이 달랐지. 얼마나 많은 우량목들을 베어 갔는지 일월산은 잡목으로 뒤덮여 버렸어”라고 말했다.

김종수 이장과 권용인 대티골마을발전위원장 등 30여 가구 50여 명의 주민들은 수탈과 훼손의 아픔을 간직한 오지 속의 대티골을 자연치유생태마을로 가꾸고 있다. 금강송과 황토로 집을 짓고 장작으로 불을 때는 황토구들방을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영양 특산인 고추를 비롯해 산마늘(명이나물), 두메부추, 전호, 눈개승마,섬초롱,쑥부쟁이,미역취 등 다양한 산나물은 이 마을의 자랑거리다.

▲ 옛 국도길과 칠밭길이 갈라지는 칠밭목.

▲ 마을 주민들이 숲길 중간 중간에 그네와 벤치를 설치해 쉬었다 갈 수 있게 했다.

대티골 주민들은 또 옛 국도와 댓골길, 옛마을길, 칠밭길 등 마을 숲길을 다듬고 정비해 ‘치유의 숲’을 만들었다. 이런 결과 2008년 경상북도가 지원하는 부자마을 만들기사업에 선정되고 2009년엔 생명의 숲이 주최한 아름다운 숲길 공모에서 어울림상을 수상했다. 대티골은 약 300년 전 윗대티에 충주 지씨, 아랫대티에 고성 이씨가 살기 시작하였는데, 대티는 ‘큰 고개’라는 뜻의 대치(大峙)에서 대티골로 명칭이 변했다.

대티골 숲길은 아랫대티골의 일월산자생화공원에서 시작된다. 공원에는 일제 때 일월산과 봉화의 장군봉 등지에서 캐낸 광물을 제련하던 용화광업소가 남아 있다. 숲길은 마을을 관통하는 반변천을 따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우측의 옛 국도로 접어든다. 금강송이 즐비한 옛 국도길 중간쯤 가면 ‘영양 28km'라고 적힌 녹슨 이정표가 나오는데, 일제가 남긴 흔적이다.

▲ 반변천이 흘러내리는 이끼계곡.

▲ 산하클럽 조태봉 트레킹대장(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도보여행객들에게 대티골을 설명하고 있다.

숲길은 칠밭목에서 외씨버선길을 오른쪽으로 보내고 계곡으로 내려선다. 숲길은 지금까지 걸어왔던 옛 국도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한 숲 사이로 난 길은 이끼계곡과 함께 대티골 주변을 돌고 윗대티골로 내려온다. 낙동강의 상류 지류인 반변천의 발원지인 뿌리샘이 이곳에 있으며, 숲길 곳곳에는 과거 화전민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숲길을 자주 간다는 도보여행 커뮤니티 산하클럽 조태봉 트레킹대장은 “끝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숲길은 마음을 치유하는 길”이라며 “걷기문화가 탐식여행이 되어선 안 된다. 자기를 되돌아보는 성찰과 지역문화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세호씨(서울 서교동)는 “인위적인 길을 만드는 것보다는 대티골 숲길처럼 폐쇄된 길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며 “버린 길을 주민들이 재활용해 에코길로 잘 가꿔놓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 대티골 숲길은 하늘을 가릴 만큼 나무들이 빼곡하다.

▲ 옛 국도길 초입에서 바라본 윗대티골 마을.

영양 대티골 ‘치유의 숲’ 정보

경북 영양군 일월면 용화리 대티골 ‘치유의 숲’ 탐방로는 윗대티골 입구에서 시작되는 옛 국도길(4km)을 비롯해 옛 국도의 칠밭목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칠밭길(1.7km), 옛마을길(1.6km
), 댓골길(1.8km) 등이 있어 상황에 맞게 코스를 정하면 된다. 보통 일월산식물자생공원·용화광업소~아랫대티골·용화리 삼층석탑~윗대티골 갈림길~옛국도길~칠밭목~뿌리샘 갈림길~큰골~합수지점~윗대티골 순으로 트레킹을 즐긴다. 거리는 총 10.7 km 4시간 정도 걸린다.

산하클럽(www.greenwm.com)이 당일 트레킹을 수시로 떠나고 있으며, 대티골 홈페이지(www.daetigol.com)에 마을 소개와 황토방으로 지은 숙소, 특산물 등의 정보들이 잘 나와 있다. 폐교된 용화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한 대티골의 유일한 음식점 일월산한우네(054-683-5577)는 1등급 이상의 한우고기만을 취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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