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그림을 못 그립니다. 그리고 싶은 마음은 있어서 컵이든 마우스든 그려보자 싶어 손바닥만한 스케치북 하나 산 게 지난겨울이었는데, 이름 석 자만 적혀 있습니다. ‘썬데이페인터’라도 되고자 했지만 현실은 ‘썸데이페인터’죠.
3~4년쯤 전에 그림을 그리는 분과 캠핑을 간 적이 있습니다. 주간지와 단행본 표지 작업을 꽤 오래, 많이 하신 분입니다. 물었죠. “그림을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그려요.” 선을 이으면 모양이 되고, 모양이 이리저리 정돈되고 겹치면 그림이 됩니다. 색은 칠할 수도 있고, 그냥 둘 수도 있죠. 볼펜이든 붓펜이든 크레파스든 연필이든, 혹은 스케치북이든 이면지든 화장지든 영수증이든, 상관없죠. 그리고 싶으면 그리면 된다,고 했습니다.
캠핑 인구가 300만이라고 하니 많은 분들이 휴가로 캠핑을 다녀오셨겠지요.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캠핑에 입문하려 했다가 고가의 장비와 어떤 막막함 때문에 미루거나 포기하셨을 겁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진짜 자동차와 정말 똑같이 그리는 것도 뛰어난 재주지만, 모든 그림이 그렇다면 사진을 찍지 왜 애써 그리겠습니까?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자동차도 있어야 재밌잖아요. 아이가 들뜬 마음으로 그린 그림이 더 궁금하시다면서요. 캠핑을 시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캠핑을 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세팅을 하건, 어떤 장비를 들이건 아랑곳없이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말이죠.
캠핑을 주저하는 이들에게 그냥 시작하시란 조언이, 고작 빈 종이에 (그럴싸하지 않아도) 그림 하나 못 그리는 이의 말이면 설득력이 없겠다 싶네요. 손바닥만한 메모지를 펴고 도넛 모양의 그리퍼를 그려봤습니다. 큰 동그라미와 작은 동그라미 하나씩,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때 묻은 빨간색이 마음에 들지 않아 라임그린과 형광오렌지로 점박이를 넣었습니다. 홈페이지 주소도 재미로 새겼습니다. 꽤 괜찮아 보입니다. 동그라미가 완전하지 않고 되려 울퉁불퉁해서 더 재미난 그림이 되었습니다. 이 칼럼에 이미지가 들어가지 않는 게 어찌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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