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러닝|2013년 몽골 고비사막 레이스 ①
트레일러닝|2013년 몽골 고비사막 레이스 ①
  • 글 사진 김정호 런액스런 회원
  • 승인 2013.08.2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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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패기로 도전한 사막횡단의 꿈

▲ 고비사막 레이스는 총 250km를 달려야 하는 극한의 울트라 마라톤이다.

울트라 마라톤을 한 번이라도 뛰어본 사람들에게는 꼭 도전해보고 싶은 인생 최대의 모험이 있다. 바로 사막 레이스 그랜드슬램(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대륙) 달성이다. 이는 만만치 않은 시간과 비용, 노력이 필요하므로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이 목표에 도전하는 20대 청년들이 부쩍 늘었다. 작년에는 대학생 3명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놀라운 일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2회에 걸쳐 그랜드슬램을 위해 도전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꿈과 희망을 포기하고, 비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자극이 될 수 있는 그의 도전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다.  - 유지성 오지 레이서

▲ 언덕길을 오를 때는 페이스 조절이 중요하다.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한 첫 도전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사실일까? 어릴 적부터 그토록 바랬던 사막횡단의 꿈이 이렇게 사막 레이스로 현실이 됐다. 첫사랑, 첫 키스처럼 처음이 들어간 일들이 설레고 기대도 컸던 것처럼, 250km나 되는 장거리 코스, 사막이라는 특수한 환경, 연습과 완주까지 모든 게 내겐 처음이었다. 두근거림 때문에 잠도 오지 않았고 연습 땐 고통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흥분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처음이란 것 때문에 불안감과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과연 젊은 날의 패기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객기로 끝나고 말 것인가? 답을 찾는 일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 그 길을 향해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고비 넘어 고비’, 고비사막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들어봤고 하게 되는 말이다. 그만큼 준비과정에 어려움이 많을뿐더러 특히 대학생에게는 가혹한 대회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여곡절의 고비를 넘어야만 했다. 참가자들이 묵을 호텔이 위치한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보러시는 중국 북서쪽 카자흐스탄과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다.

보러시에 가기 위해서는 우루무치까지 비행기를 타고 다시 야간열차를 타고 10시간을 달려야 했다. 처음 중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새롭고 신기했던 것은 잠시뿐이었고, 영어조차 전혀 통하지 않아 기차역에 가기 위해 입으로 기차 소릴 내고 손짓 발짓으로 한참 동안 설명해야 했다. 마침내 기차역에 도착해서 한국 팀 동료를 만나자 그동안 쌓였던 긴장감이 일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낯선 타지에서의 두려움은 그렇게 달리는 야간열차와 함께 내 곁을 떠나갔다.

▲ 대회 시작 30분 전 주최 측의 브리핑을 들으면서 마지막 점검을 한다.

한국팀은 본래 일정보다 하루 일찍 참가자 테스트를 받았다. 조금이라도 여유 시간을 벌기 위해 미리 신청한 덕분이었다. 한국팀 리더인 동환형님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테스트 중엔 장비 검사가 가장 꼼꼼히 진행됐다. 그만큼 장비는 모두에게 가장 민감한 부분이다. 내 가방 무게는 8.5kg이었지만 다른 참가자보단 가벼운 편이었다. 장비검사가 끝난 뒤 배낭을 메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가방의 무게가 새삼 몸에 와 닿기 시작했다.

▲ 출발 신호와 함께 힘차게 달려나가는 선수들.

대회 브리핑이 끝나고 공개된 코스는 아무리 표를 봐도 지형과 난이도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직접 발로 뛰고 눈으로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드넓은 모래사막을 땀 흘리며 걷는 모습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대회장에 도착하고 보니 틀렸다는 걸 알았다. 고비사막은 흔히들 생각하는 황금빛의 수많은 모래 언덕들로 이루어진 사막이 아니다. 붉은빛의 돌들과 연푸른빛 초원, 색 바랜 풀들이 펼쳐진 드넓고 황량한 땅이었다.

▲ 중국 전통가요를 부르며 선수들을 축복해주는 여가수.
마침내 출발 첫날, 42km 달리기
잔뜩 긴장한 채 밤을 보냈지만, 아침에 일어나보니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완주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했지만, 선선한 바람이 내 몸을 감싸면서 예감이 좋았다. 가져온 식량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출발 30분전 코스 브리핑을 들으면서 준비운동을 했다. 드디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탕! 소리와 함께 함성을 지르며 모두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다들 힘이 넘치는지 페이스가 빠르다. 나는 원래 남들보다 다소 느린 페이스로 시작했다가 천천히 따라잡는 스타일이라 속도를 내지 않고 우직하게 달렸다. 7일간의 장거리 레이스라 첫날부터 오버페이스를 할 필요는 없었다.

길은 온통 돌멩이 투성이었다. 발목 부상의 위험이 있었지만 다행히 굽이 높고 쿠션이 좋은 신발 덕에 무사히 지나칠 수 있었다. 돌길을 지나고 언덕을 넘자 완만한 언덕들이 펼쳐졌다. 레이스 중간마다 보이는 양들은 뛰는 내내 보는 재미까지 주었다. 그렇게 체크포인트를 지나면서 서서히 감이 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나를 앞서나간 선수들을 하나둘씩 따라 잡다 보니 저 멀리서 준혁 형님이 보이기 시작했다.

▲ 코스 중간마다 만나는 양 떼들은 레이스의 지루함을 잊게 해준다.

마침내 체크포인트 3이 가까워질 때쯤 되자 준혁 형님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마지막 체크포인트 4를 남겨두고 경사가 높은 등산로가 보였다. 뛰어 올라갈 순 없었지만,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한발 한발 나아갔다. 나름 여유롭게 올랐지만, 산악인 준혁 형님만큼의 여유로움은 가질 수가 없었다. 정상에 다다르자 부처님 얼굴이 조각된 거대한 석상이 우리 두 사람을 반겼다. 이어진 내리막은 사막의 오아시스같이 달리기의 갈증을 해소시켜줬다. 그렇게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했던 첫날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저 멀리 펼쳐진 언덕들이 꼭 녹차아이스크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 힘은 들지만 지금 이렇게 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필자를 웃게 한다.

둘째 날, 양들의 천국 코스 41.7km
둘째 날 코스는 경사가 거의 없어 달리기도 편했고 다리에 부담도 덜해 페이스를 조금 올렸다. 발목까지 자란 풀을 헤치며 길게 뻗은 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저 멀리 하얀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녹색 언덕이 꼭 설탕가루가 뿌려진 녹차 아이스크림같이 보였다.

달리는 중간마다 만나는 선수 중엔 부상자들이 속속 보였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고생하는 이들도 있었다. 다행히 나는 아직 물집도 없고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없었다. 오히려 몸이 더 가벼워진 것 같았다. 컨디션이 좋다 보니 그동안 완주에 대한 불안감에 두려워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직접 이렇게 뛰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시작하기도 전에 겁먹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만년설로 뒤덮인 설산과 벌거벗은 듯한 언덕들을 뒤로하고 나무가 울창한 숲으로 접어들었다. 흰색 민들레 씨앗이 사방팔방에서 흩날리고 있었다. 마치 얼마 안남은 골인 지점을 안내하는 손짓처럼 느껴졌다.

▲ 흐르는 계곡물에 얼굴도 씻고 밀린 빨래도 하며 둘째 날을 마무리했다.

자세히 보니 근처 양모공장에서 날아오는 양털이었다. 양털의 안내를 따라 뛰다보니 북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골인 지점에는 먼저 도착해 손짓으로 나를 부르는 선수들이 있었다. 텐트 주변에는 설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맑은 계곡물이 모처럼 개운하게 갈증을 해결해줬다. 그날의 쌓인 피로와 땀을 시원하고 깨끗한 계곡물로 씻어냈다.

▲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레이스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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