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러닝 | 사하라 사막보다 더 힘든 습도와의 전쟁
트레일러닝 | 사하라 사막보다 더 힘든 습도와의 전쟁
  • 글 사진 유지성 아웃도어 자문위원·오지레이서
  • 승인 2013.07.1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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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인디아 레이스…켈랄라 문나르~쿠밀리 200km 코스

▲ 마을과 마을이 이어지는 울트라 인디아 레이스.

인디아 레이스는 자급자족 서바이벌 오지레이스지만 코스의 구성을 보면 트레일 레이스의 기본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비포장과 포장길, 개울과 강, 크고 작은 마을들을 통과하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간혹 보이는 코끼리와 수시로 나타나는 마을 사람들은 도전의 여정을 더욱 빛내주는 조연의 역할을 한다.

대회는 인도 남부 켈랄라지역의 문나르에서 쿠밀리까지 5일 동안 총 연장 200km의 코스를 매일 평균 40km씩 나누어 달리게 된다. 달리는 거리만 보면 다른 대회들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코스의 높낮이가 상당히 심하다. 해발 1300~2000m를 수시로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니 대회가 끝났을 땐 신발 바닥이 다 갈려서 반들반들해졌다.

▲ 대회에는 총 19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레이스를 즐겼다.

▲ 출발 전 관계자에게 주의사항을 듣는 선수들.

순박한 현지인들과의 추억
첫 출발은 문나르의 공원에서 시작했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장비를 갖추고 달리는 선수들이 신기하기만 한지 눈이 휘둥그레져 넋을 잃고 바라본다. 먼저 마을 사람들에게 밝은 미소로 인사를 하면서 달렸다. 이 대회의 첫 번째 참가자로서 다음 참가하는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이미지를 남겨 성공적인 대회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식적이지 않고 진정으로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얼굴을 보면 낯선 이방인이라도 먼저 다가와 손을 내민다. 처음 와보는 인도였기에 현지 사람들과 레이스의 즐거움과 행복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험난한 코스에 몸이 지쳐가니 사람들과 웃으며 장난치는 일이 쉽지 않았다.

▲ 아이들은 필자가 신기한지 만져보기도 하고 연신 질문을 던진다.

▲ 수업을 듣던 학생들도 필자를 반겼다.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가릴 것 없이 온 동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뛰쳐나와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뭔지 질문공세를 퍼붓게 되면 정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후로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웃기만 하면서 멀찌감치 떨어져 달리기 시작했다.

대회 둘째 날, 한 마을을 지나가는데 할머니가 부른다. 아직 제한시간까지 여유도 있고 마침 쉬어갈 타이밍이었다. 혹시라도 먹을 걸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집안으로 들어가니 역시나 온 집안 식구가 나와 이것저것 물어본다. 지금은 대회 중이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놀라면서 맛있는 인도 커피와 과자, 음식을 대접한다. 감사한 마음에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갑자기 묘한 분위기가 흐르더니 그 집 아버지가 진지하게 말을 건넨다.

첫째 딸이 미인인데 소개해주면 혹시 결혼할 생각은 없냐면서. 당황해서 뭐라 하기도 전에 딸이 눈앞에 나타났다. 결국엔 서로 크게 웃으면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국제결혼을 꿈꾸는 이들에겐 오지레이스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첫째 딸은 정말 예뻤다.

▲ 인디아 레이스를 위해 준비한 식량.

▲ 조촐한 캠핑장이지만 분위기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울트라 인디아 레이스의 특징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길이다. 다른 오지레이스와는 다르게 인디아 레이스의 코스는 생명의 길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듬고 가꾼 인위적인 길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마을을 이어주는 자연스런 소통의 길로써 사람의 체취가 묻어있는 정겨움이 느껴졌다.

두 번째는 오르막과 내리막, 즉 비탈과의 싸움이었다. 얼마나 경사가 심한지 눈대중으로도 경사도가 30도는 넘는 것 같았다. 올라가는 건 머리를 숙이고 바닥만 보며 가면 되지만 내려갈 땐 아찔함부터 든다. 신발로 제어를 하려해도 한없이 미끄러져 차라리 쉬지 않고 한 번에 달려 내려가는 게 안전했다.

세 번째는 습도와의 전쟁이다. 최고 습도 80%에선 가만히 있기만 해도 지친다. 40도가 넘는 한낮 온도에 습도까지 높으니 체감온도는 더욱 높게만 느껴졌다. 사하라 사막에서의 58도와 도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어떤 면에선 더 힘들기까지 했다.

▲ 목가적인 풍경의 인도 시골마을.

▲ 80%가 넘는 습도를 견뎌가며 자기와의 싸움을 해야 한다.
▲ 레이스를 완주하고 목에 화환을 걸었다.

한계에 도전하며 만난 친구들
메이저가 아닌 신생대회라 그런지 참가인원이 19명이 전부인 소규모 대회였다. 하지만 전 세계 랭킹 1~2위를 다투는 친구도 참가했고, 선수 구성면에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대회였다. 경험이 풍부한 참가자들은 알아서 함께 서로를 북돋아주고 의논하면서 달렸다.

그러나 아무리 고수라도 힘든 건 똑같았다. 밤마다 텐트에 누워 있으면 삭신이 쑤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통증으로 끙끙 거리면서도 그 소리에 모두가 함께 웃었다. 오지레이스는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의미도 있지만 지구촌 각지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한번 사막을 달려보면 그 마력에 빠져 다시금 찾아 가게 만든다. 하지만 트레일 코스는 중독성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렇지만 인디아 레이스 같이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코스를 잘만 개발한다면, 광활한 대자연이 주는 감동 못지않은 아기자기한 재미와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이 있듯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또 다른 길도 존재한다는 걸 느낀 행복한 시간이었다.

▲ 대회가 끝나고 선수들과 함께 찍은 단체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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