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소머리와 혀
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소머리와 혀
  • 글 사진 박찬일 기자
  • 승인 2013.07.1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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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국물과 고기

▲ 소 혀 앞쪽은기름이 적어서 쫄깃하고 뒷부분일수록 더 기름져서 부드럽다.
기록을 보면 예전 우리나라 사람들은 탕을 정말 많이 먹었다. 으레 그러려니 했는데, 실제로 탕에 살고 탕에 죽었다. 탕이란 국물이다. 국물요리는 밥을 먹는 추운 지방 문화권에서는 필수다. 밥에 양념을 하지 않으니, 뭔가 목에 잘 넘길 수 있는 소금 친 국물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거기에다 추운 날씨는 더운 국물을 당기게 한다.

서양에서도 국물이 넉넉한 스프는 추운 지방에서 널리 먹었다. 북유럽과 러시아, 프랑스 북부와 독일, 이탈리아 북부에서 스프를 즐겨 먹었다. 남부 유럽으로 가면 스프가 별로 없다. 요즘도 1년 가야 서너 번 먹을까 말까 한다. 확실히 국물은 추워야 당기는 법이다.

국물과 소스로 활용하는 소머리
우리의 탕 문화는 가정과 요식(料食), 즉 사먹는 밥으로 나뉘어서 발전했다. 집에서는 설렁탕이나 해장국 같은 ‘규모’의 요리를 하기 어렵다. 소뼈를 엄청 사들여 오래도록 고는 일은 일반 가정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설렁탕, 해장국, 갈비탕은 사먹는 요리로 일상화됐다.

요즘은 소머리국밥이라고 하여, 소머리로 끓여낸 탕반이 별도로 팔린다. 그러나 원래는 소머리도 설렁탕의 재료였다. 넣고 안 넣고는 설렁탕집의 선택이었을 수 있지만, 넣는 것이 보통이었다. 소머리가 값이 싸고 국물과 씹을 고기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서울 장안의 설렁탕집에 소머리를 걸어 놓고 팔던 일제 때 기록사진이 종종 보인다.

소머리는 아주 유용한 음식 재료다. 우선 뼈는 국물을 내는데 아주 좋다. 넉넉하게 진하고 담박한 국물을 뽑게 해준다. 뇌는 따뜻하게 하여 소금을 쳐서 요리로 먹거나, 소스를 할 수 있다. 서양에선 소스를 만드는데 자주 쓴다. 양이나 돼지 등의 뇌도 소스가 된다. 아주 진하고 기름지며 강한 맛의 소스다.

필자도 이탈리아에서 종종 만들고 팔았다. 주로 송아지의 뇌가 이용된다. 하얗고 핏기 있는, 분홍빛의 도는 송아지 뇌는 통째로만 판다. 화이트와인을 쳐서 한 번 끓이고, 곱게 믹서로 간다. 다시 육두구와 후추로 양념을 하고 치즈를 섞어서 고기 요리에 축축하고 국물 있는 듯한 소스로 썼다. 고소한 맛으로는 웬만한 견과류 이상이다.

신기하게도 이런 소스에 호두를 넣어서 맛을 조화롭게 하고 고소한 맛을 더해주는 경우가 있다. 신기하다고 한 것은 이유가 있다. 호두와 뇌가 그럴 듯하게 닮은 까닭이다. 주방장에게 그런 말을 했더니 “이탈리아 사람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호두는 폐에도 좋다고 덧붙인다. 호두 반쪽의 모양을 보니, 정말 허파처럼 보였다.

음식이나 사물의 모양이 인체의 어느 장기와 닮으면 곧 그 부분에 좋다고 생각하는 민간 통념이 있다. 동물의 성기를 먹으면 정력이 세진다고 믿는 것이 그런 까닭이다. 어느 정도 효험(?)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개는 그다지 신빙성이 없다. 어쨌든 소 뇌 요리는 요즘엔 거의 보기 힘들다. 금지가 풀렸는지 모르지만, 필자가 있던 시절에는 광우병이 발병하는 바람에 판매가 금지되었다. 많은 미식가들이 한숨을 쉬고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머리탕을 끓일 때는 반드시 필요한 게 있다. 바로 소 혀다. 혀가 빠진 설렁탕(곰탕)은 진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우설이라고 돌려 말하는 건, 뭔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있어서다. 소 혀는 아주 멋진 요리의 재료이지만, 잘 다루기는 어렵다.

굽거나 삶아서 먹는 소 혀
소 혀는 꽤 크다. 한 개에 1kg가 넘는다. 앞쪽은 기름이 적어서 쫄깃하고 뒷부분일수록 더 기름져서 부드럽다. 서양에선 뒷부분은 구워서 먹고 앞부분은 삶아서 먹는다. 근육 조직의 스타일에 맞춰 조리법을 달리 하는 것이다. 기름진 부위는 굽기에 적당하다.

일본의 야키니쿠에는 소 혀가 들어가는데, 생 혀를 굽고 무를 얹어서 먹는다. 이 부분이 기름기(마블링처럼 촘촘한 지방이 박혀 있다)가 많은 쪽이다. 얼마 전 쓰나미로 고통 받았던 센다이 지역은 소 혀 요리로 유명하다. ‘규탄’이라고 부르는데, 보통 훈제한 것이 많다. 시내 기념품점에서도 많이 판다. 훈제 향이 도는 분홍색 살점에 청주나 맥주를 마시기 좋다.

유명한 이탈리아의 요리사 중에 발테르라는 친구가 있다. 미슐랭 별을 획득한 인기 요리사다. 그의 시그너처 메뉴(대표 메뉴) 중에 송아지 혀 밀페이유가 있다. 송아지 혀를 삶은 후 층층이 쌓고 그 사이사이에 푸아그라를 바른 요리다. 대단히 원기왕성하고 솔직담백하며, 에너지가 넘치는 요리다. 아주 맛있다. 송아지의 울음을 생각하면 미식을 못한다. 서양에선 송아지 고기가 흔하다. 암소는 젖소로 키우고, 수소는 어려서 잡아버린다. 우리나라는 육우라는 이름으로 오래 길러서 정육을 많이 얻으려고 하므로, 송아지 고기가 없다.

다시 설렁탕으로. 설렁탕에 들어가는 소머리는 황소가 좋다. 지금도 도축장에 가면 소머리가 진열되어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뿔이 우람하고 큰 것이 황소다. 고기가 많이 나오고 국물이 진하다고 한다. 소머리는 푹 삶으면 젤라틴 성분이 많은 국물이 생기고, 쫄깃한 살점이 많다. 건강에도 좋아 보인다. 탕에도 넣고 수육으로도 판다. 소머리 수육은 국물이 진득진득하다. 소주를 한 잔, 캬 들이키고 수육을 진한 국물에 한 번 적신 후 소금에 찍으면 기막힌 안주다.


박찬일 | 소설을 쓰다가 이탈리아에 가서 요리학교 ICIF, 로마 소믈리에 코스와 SlowFood 로마지부 와인과정을 공부했다. 시칠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한국에 돌아와 이탈리아 레스토랑 ‘뚜또베네’ ‘트라토리아 논나’ 등을 성공리에 론칭시켰다. 지은 책으로 <박찬일의 와인 컬렉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이 있다. 최근 서울 이태원에 이탈리아 전문식당 인스턴트펑크를 개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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