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패킹 | 태안 해변길 ② 해변길 걷기
백패킹 | 태안 해변길 ② 해변길 걷기
  • 글 서승범 기자 | 사진 엄재백 기자
  • 승인 2013.06.17 17: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꿈은 길에서 여문다…드르니항 ~ 몽산포

▲ 솔모랫길은 아름다운 태안의 바다를 보며 걷는 길이다.

5월이 계절의 여왕인 이유는 두 가지다. 숲이 참 아름답기 때문에, 볕이 그리 따갑지 않기 때문에. 6월이면 신록은 조금 짙어질 테고, 해는 조금 강렬해질 것이다. 그래도 오뉴월은 걷기 좋은 계절이다. 숲이 더 짙어지면, 대지가 더 달궈지면 걷기 힘드니 늦기 전에 함께 걸어나 보자고 말을 꺼냈다. 두 사람이 언제 어디로 떠날 건지 물었다.

▲ 드르니항 빠져나가는 길. 물이 들어왔을 땐 여기로 지나지 못하고 우회로로 간다.

지금은 ‘태안’을 검색하면 축제와 맛집, 펜션 등이 관련 검색어로 뜨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선 검색어는 단연 ‘원유’ 혹은 ‘원유 유출 사고’였다. 2007년의 일이다. 삼성물산 소속 ‘삼성1호’가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 스트리트’와 부딪혀 까만 원유가 태안의 바다를 뒤덮었다.

상처 아문 자리
기억하다시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 기름띠를 걷어냈고, 이제 상처는 어느 정도 회복된 듯하다. 올해 초,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은 유류 오염 손해배상 예비 사정 재판에서 손해액은 7,341억 원으로 판결했다. 법원에 신청된 피해액과 방제 비용 등 손해액은 4조 2,200억 원이다. 피해 주민들은 당연히 반발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놀라운 건, 사고 당시 나라 안팎의 전문가들이 내놓은 분석과 예측을 뛰어넘는 회복 속도. 분명한 건, 지금 태안의 해변은 아름답다는 사실.

▲ 바닷가 뒤편으로는 늘 이런 습지가 있다. 바다 주변의 중요한 생태계.

태안의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는 둘이다. 상처가 회복되어 바다가 원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아 가는 것이 첫 번째 이유라면, 두 번째는 그 바다를 따라 난 길이다. 태안의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생긴 거다. 태안 해변길이다.

일반적으로는 몽산포항에서 드르니항을 향해 걷지만, 우리는 트레킹 뒤에 짐을 풀고 캠핑을 해야 했기에 드르니항에서 몽산포를 향해 걸었다. 드르니항에 6명이 모였다. 태안 사무소에서 천홍래 계장과 김영래 자연환경해설사가 동행했고, ‘해변길+캠핑’ 여행에는 시나리오 작가 김영희, 배우 송삼동이 함께 했다.

▲ 솔모랫길 주변에 핀 민들레. 철만 맞추면 해당화도 볼 수 있다.
▲ 태안 해변길의 대부분은 말 그대로 태안의 해변을 따라 걷는다.

발길 재촉하기 아까운 길

드르니항은 인도교 공사가 한창이다. 안면도는 태안반도 남쪽에 있는 섬이다. 차를 타고 안면도를 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안면대교다. 다리가 놓이기 전, 사람들은 작은 항구에서 배를 타고 안면도와 태안반도를 오갔다. 그 항이 드르니항이다. 들어오는 이가 많다는 뜻이다. 공사가 끝나면 드르니항에서 좁은 바다 건너 안면도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

▲ 신두리 염전. 아직도 전통 방식으로 소금을 만들어낸다.

시나리오를 쓰는 김영희 작가는 사실 아웃도어의 달인이기도 하다. 제주도는 두 발로도 돌고, 자전거로도 돌았다. 언젠가 함께 한 캠핑장에서 그가 내놓은 ‘삼겹살 김치찜’의 맛은 제법 괜찮아서, 아직도 만날 때마다 얘기한다. 물론 본업 역시 정진 중. 지난해 전통문화 소재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언젠가 ‘책 읽어주는 사내’라는 영화를 만나게 된다면 김영희라는 이름을 기억하시길.

그리고 송삼동, 내가 아는 배우는 참 많지만, 나를 아는 배우는 송삼동이 유일하다. 처음 만난 건 김태원의 ‘미떼’ 광고에서였지만, 그가 주연한 ‘낮술’을 보고 광고보다 훨씬 많이 웃었다. 얼마 전 개봉한 ‘남쪽으로 튀어’에도 나왔지만, 독립영화와 단편영화도 놓지 않는다. 중요한 건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거니까. 그는 다다음날 연남동 공원에서 ‘사원증’이라는 단편영화를 찍는다고 했다. 행복해 보였다.

▲ 논두렁 따라 걷는 길. 그늘은 없었지만 아직 볕은 따갑지 않았다.

동행들의 근황을 듣다보면 곧 염전을 만나게 된다. 염전 있던 자리가 아니라 아직도 사람들이 소금을 만드는 염전이고 마을 이름이 신온리여서 신온리 염전이다. 바닷물은 사리 때 아주 멀리 빠지고 아주 가깝게까지 밀려온다. 이때 바닷물을 가두어 염전으로 들인다. 이 물은 하루에 염도를 1도씩 높이면서 한 칸씩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바다를 앞에 둔 마지막 칸에서 사람의 손에 의해 소금 결정이 된다.

▲ 캠핑 장비를 나누어 넣었지만, 경량화된 장비라 걷는 데 무리는 없었다.
▲ 드디어 곰솔림 길로 접어들었다. 걷기만 해도 치유가 되는 느낌이랄까.

▲ 곰솔림 사이로 난 길을 지나가는 일행.

염전을 지나 한 시간 정도 편한 걸음으로 걷다 보면 약간의 언덕배기를 만난다. 태안 사람들의 대부분은 바다에 기대어 산다. 소금밭을 일구는 사람이나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낚는 사람이나 갯벌에서 갯것을 하는 이들이나 여행객들을 맞이하는 이들이나, 대개는 바다를 보고 산다. 언덕배기를 넘으면 이들이 삶을 기댄 바다가 펼쳐진다. 청포대 해수욕장과 이웃한 별주부마을에서는 전통 방식인 독살을 체험할 수 있다. 별주부마을은 중간 휴식을 취하기 딱 좋다. 몽산포에서는 약 5km, 드르니항에서는 약 8km 거리이지만, 전체적으로 코스가 완만하고 지루하지 않아 별주부마을에서 한 번 정도 길게 쉬면 그리 힘들지 않다.

또 한 곳 쉴 만한 곳은 자연놀이 체험장이다. 청포대에서 20분 정도 거리다.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를 베고 다듬어 놀이터를 꾸며놓았다. 들쭉날쭉한 통나무 위에서 깡충깡충 뛰며 한 아이가 놀고 있었다. 태안 모항초등학교 1학년 예원이. 엄마와 함께 솔모랫길을 걷다가 놀이터를 만나 신이 났다. 지나는 어른들은 정자에 앉아 쉬기만 할뿐, 놀이는 하지 않았다.

▲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 예원이.

바다의 꿈

솔모랫길의 백미는 곰솔림길이다. 곰솔은 소나무 중에서도 해안사구에 산다. 우리가 산에서 보는 소나무는 육지에 산다 하여 ‘육송(陸松)’이라 한다. 곰솔은 사구, 그러니까 모래언덕에 산다. 태안 바닷가의 곰솔은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부러 심은 나무들이다. 사구 중에서도 곰솔이 사는 언덕은 어느 정도 육지화된 사구다. 사구의 최전선에는 갯그령이 산다. 백사장과 사구를 구분하는 기준은 갯그령이 사느냐(사구) 안 사느냐(백사장)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김영래 자연환경해설사가 해준 이야기다. 그가 전해준 ‘솔방울의 비밀’은 언젠가 캠핑장에서 즐길 놀이로 소개할 날이 있을 것이다.

▲ 자연놀이 체험장에 마련된 쉼터.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를 다듬어 만들었다.
▲ 동네 꼬맹이들과 인사와 농담을 나누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 해안 사구. 바닷가 최전선에 사는 식물은 갯그령이다.

곰솔 사이로 난 길은 조붓하다. 쌓인 모래는 오랜 시간 다져져 단단했지만, 그 위로 다시 오랜 시간 솔잎이 자리를 잡아 내딛는 발걸음이 부드럽다. 천홍래 계장은 맨발로 걷는 사람도 많다고 일러줬다. 천 계장은 2010년 늦가을부터 해변길을 조성하기 위해 태안 바닷가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어떤 길이 좋을까 고민하며 하루 30km씩 걸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도 곰솔림길이다.

곰솔림길이 끝나면 곧 몽산포다. 몽산포. ‘꿈 몽’에 ‘뫼 산’이다. 산을 꿈꾸는 바다였을까? ‘몽산포’라는 이름은, 사실은 100년 전의 마을 몽대리와 동산리에서 한 자씩 따왔다고 한다, 어쨌거나. 태안 해변길은 태안 사람들의 꿈이 담긴 길이다. 6년 전의 검은 상처를 빨리 치유하기를 바라는 꿈. 그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던 국민들에게 좋은 풍취를 보여주고 싶은 꿈. 해변길의 모든 코스를 걷진 않았지만, 솔모랫길을 걸은 깜냥으로 판단하건대, 그 꿈은 이뤄졌다. 솔모랫길에 동행한 김영희 작가와 송삼동 배우의 꿈은? 그런 얘기는 캠핑장에서 하는 거다.

▲ 솔모랫길 트레킹이 끝났다. 캠핑 모드로 전환하기 전의 토막 휴식.
▲ 소나무 꽃에 대한 설명. 미리 신청하면 자세하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 태안해안국립공원 사무소 김영래 자연환경해설사의 해안 사구 설명.


태안국립공원 해변길 Tip - 아름다운 200리 바닷길
태안의 해변길은 2010년부터 준비해 2011년부터 차례로 개방하고 있다. 2011년에는 몽산포과 드르니항을 잇는 솔모랫길 13km 구간과 드르니항 건너 백사장항에서 꽃지해수욕장까지 12km가 노을길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2012년에는 학암포해수욕장에서 신두리 해변까지 12km가 바라길로, 신두리에서 만리포까지 22km가 소원길로 선을 보였다. 올해에는 꽃지부터 바람아래해수욕장까지 14km와 바람아래부터 영목항까지 15km가 각각 샛별길과 바람길로 조성될 예정이다. 전체 길이는 88km.

태안반도 위쪽부터 순서대로 보자면 바라길-소원길-솔모랫길-노을길-샛별길-바람길로 이어진다.

·바라길(학암포~신두리)의 ‘바라’는 바다의 옛말인 ‘아라’에서 왔다. 바라길은 자연관찰로가 있는 학암포해수욕장에서 시작되어 곰솔림을 지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구를 가진 신두리 사구를 만나게 된다. 신두리 사구는 천연기념물 제431호다.

·소원길(신두리~만리포)은 원유 유출 사고가 일어났던 지역이다. 당시 모인 자원봉사자만도 130만 명이다. 신두리 해변을 지나면 조선시대 성곽의 모습을 간직한 소근진성을 만나고, 방근제 뚝방에서는 황톳길을 맨발로 걸을 수도 있다. 천리포 해변의 천리포수목원은 이미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정평이 났다. 수목원을 지나면 야트막한 산을 오르는데 국사봉이다. 해발 100m에 불과하지만 바닷가라 조망이 좋다.

·노을길(백사장항~꽃지)은 해가 지는 모습이 기가 막혀 붙은 이름이다. 캠핑을 배제하고 길만 생각한다면, 해변길 중 으뜸이라고 천홍래 계장이 살짝 말해줬다. 역시 시원한 바다의 소리를 들으며 빽빽한 곰솔림을 지나게 되고, 기지포의 해안사구, 방포 모감주나무 군락지(천연기념물 제138호)를 만날 수 있다. 종점인 꽃지의 할미할아비 바위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슬픈 이야기도 함께 가지고 있다.

교통
태안버스터미널에서 각 코스의 시작점으로 갈 수 있다. 바라길은 원북(학암포)행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소원길은 역시 원북(신두리)행 시내버스를 타고 신두리 해변에서 내리거나 소원(만리포)행 시내버스를 타고 만리포 해변에서 내리면 된다. 솔모랫길은 안면도행 시내버스나 시외버스를 타고 남면소재지에서 내리면 된다. 노을길의 출발지인 백사장항을 가려면 안면버스터미널에서 태안행 시내버스를 타고 백사장에서 내리면 된다. 정류장 이름이 백사장이다.

몽산포캠핑장에서 캠핑을 하다가 걷고 싶다면 콜택시를 이용한다. 꽃다지콜택시(041-674-4433)는 24시간 운영하며 택시가 태안에서 올 경우 요금이 추가될 수 있다. 몽산포항에서 드르니항까지 2만원 선.

먹을 것
트레킹을 하면서 먹거나 마실 것은 미리 챙기는 것이 기본이지만 관광지의 경우 가게가 많아 배낭이 좀 가벼워도 된다. 드르니항에는 작은 가게만 하나 있다. 드르니항에서 몽산포까지 반 이상 걸으면 해변가에 가게들이 많긴 하다. 솔모랫길의 경우 별주부마을에 커다란 화장실과 수퍼마켓이 있었다.

캠핑하면서 먹을 것은 몽산포해수욕장에서 차로 5분 거리인 몽산포항에서 어지간히 구할 수 있다. 제철 해산물들이 풍족하니 낙지부터 주꾸미, 간재미, 새우 등 언제 가느냐에 따라 무엇을 먹느냐가 정해진다. 우리는 항구 끝에 위치한 몽대횟집(041-672-2254)에서 회와 회무침을 마련했고, 캠핑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미리 얘기하면 아침도 먹을 수 있다. 옆으로 뻗은 방파제에서 맞은 바람도 좋았다.
몽산포 포털사이트 www.mongsanp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