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ㅣ문어
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ㅣ문어
  • 글 사진 박찬일 기자
  • 승인 2013.06.07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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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술 감싸는 부드러운 맛

▲ 우리나라에서는 살짝 데쳐 쫄깃한 식감으로 먹는 문어. 지중해에서는 부드럽게 요리한다.

이탈리아를 돌아다니면 문어가 메뉴판에 올라 있는 걸 흔하게 본다. 오징어도 그렇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문어를 좋아한다. 아마 지중해 지역에서는 모두 이 요리를 먹을 것이다. 북아프리카도 그렇고 그리스도 문어 요리로 유명하다. 이스라엘만 빼고. 지중해는 문어가 제법 많았던 것이다. 요즘엔 그다지 흔하지 않다. 뭐든 남획이 제일 문제다. 문어가 귀해서 아프리카에서 수입하는 걸 보았다. 놀랍게도 한국 역시 아프리카 문어를 사들인다. 마트에서 파는 문어 원산지가 모로코인 걸 확인한 적이 있다. 냉동을 해서 그런지 질겼다. 고소한 맛도 덜하다. 신토불이니 뭐니 하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는 문어 맛이 좋은 듯하다.

입에서 녹는 지중해식 문어요리
이탈리아에서 문어 요리를 보면서 충격에 빠졌다. 뭐, 충격까지는 아닐 수 있겠다. 여튼 놀라웠다. 그 좋은 문어를 은근히 끓는 물에 슬쩍 데치는 게 아니라 아주 팔팔 삶았던 것이다. 그것도 30분 넘게 내버려 두었다. 문어는 쫄깃한 맛으로 먹는다는 선입견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쫄깃한 동물의 조직은 오래 삶으면 부드러워진다. 설렁탕에 쓰는 소 사태부위를 오래 삶는 건 그런 까닭에서다. 그런데 왜 문어를 부드럽게 먹을까. 살짝만 삶으면 쫄깃하게 되어 더 맛있지 않을까. 그런 내 의견을 셰프에게 말했는데, 이해를 하지 못하는 듯했다.

부드러운 게 뭐 문제있어? 이렇게만 대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데쳐서 시식하라고 해봤더니, 부드럽지 않아 문제가 있다고 했다. 특이하게도 셰프는 ‘옳지 않다(Non e' giusto)'라는 표현을 썼다. 맛있다 맛없다가 아니라 문어를 슬쩍 데치는 건 옳지 않다는 거였다. 이런 세상에! 그의 문어는 흐물흐물해져서 입에 넣으면 스르륵 녹기 전까지 삶았다. 부드럽게 씹히는 문어가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쫄깃쫄깃한 문어의 식감을 이해 못하다니!

바로 이것이 서양인과 동양인의 차이였다. 서양인들이 한국의 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빨에 뭔가 들러붙는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티키(sticky)'한 것은 부정적인 의미다. 그래서 한식세계화니 뭐니 할 때 떡볶이가 서양인들에게 어필하지 못한 이유였다.

문어를 지중해식으로 삶는 법은 이렇다. 우선 문어를 두툼한 방망이로 두들기거나 바닥에 내려친다. 모두 문어 다리의 근육을 ‘와해’시켜 보드랍게 만들기 위한 방편이다. 그리고는 설설 끓는 물에 화이트와인을 조금 붓는다. 해물 냄새를 빼기 위함이다. 한국식으로 소주를 조금 부어 삶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물에는 이미 샐러리와 약간의 허브가 들어 있다. 문어의 맛을 들이는 양념이다. 소금은 치지 않는다. 미신적인지 실제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적포도주 코르크를 한 개 넣는다. 그렇게 하면 역시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모든 요리법이 문어의 연화에 몰두한다. 그렇게 삶아 건진 문어는 얼음물에 넣어 식힌다. 그동안 샐러리를 썰고 올리브를 준비한다. 함께 버무리고 올리브유로 맛을 낸다. 소금과 후추도 조금 뿌린다. 그리스나 이태리, 북부 아프리카에서 먹는 법은 대개 이렇다. 스페인은 여기에 파프리카 가루를 빨갛게 뿌려내는 경우가 있다. 그다지 맵지는 않고 달달한 맛의 향료다.
여기에 와인을 곁들여 먹는데 아주 드라이하고 시원한 걸 고른다. 아, 작열하는 태양 밑 파라솔에 앉아 이런 요리를 먹고 있노라면 퇴폐적인 생각이 들만큼 마음이 아주 무너져버린다.

그리스는 이 문어에 아주 독한 술 우조를 마시기도 한다. 딱 한국식이다. 문어에 소주. 우조는 포도 찌꺼기로 담그는 증류 독주다. 물을 섞으면 뿌옇게 변한다. 물을 타서 먹기도 하고, 스트레이트로 아주 끝을 볼 수도 있다. 이 술과 비슷한 게 이태리에선 그라파라고 한다. 한국에서 우조는 몰라도 그라파는 구할 수 있다. 삶은 문어에 그라파나 우조 한 잔, 이거 은근히 당기는 걸?

▲ 다소곳한 자세로 제사상에 올라간 문어. 경남지방에서는 문어 한 마리 통째로 올라가야 제대로 된 제사상이다.
붉은 색깔 선명한 게 싱싱해
문어를 세탁기로 돌려서 부드럽게 만든다는 얘기도 떠돈다. 그건 대체로 맞는 말이긴 한데, 꼭 세탁기가 아니어도 된다. 냉동하거나 아주 질긴 문어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지중해 나라에선 세탁기와 비슷한 탈수기 같은 장비에 문어를 돌리기도 한다. 질이 좋지 않은 문어를 먹는 방법이다. 이미 삶아도 질긴 문어에는 적용할 수 없다. 삶은 문어가 질기면 그냥 먹어야 한다.

문어를 부드럽게 삶는 건 한국인이 즐기는 방법이 아니지만, 원한다면 팁이 있다. 아주 낮은 온도로 천천히 삶는다. 일식에서는 문어를 무로 두들기는 경우가 있다. 무는 알다시피 강력한 소화효소가 있다. 문어가 부드러워진다는 것이다. 얼마나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요리란 꼭 과학적이지는 않다. 주술과 미신이 횡행하는 인간사의 압축판이 바로 밥상이니까. 일식에서 문어를 예쁘게 삶으려고 팥을 넣기도 한다. 문어 색깔이 잘 살아난다고 한다. 한번 해보시길.

시장에 가면 보통 두 가지 문어를 볼 수 있다. 부산 옆 기장 위쪽의 동해안에서 잡히는 문어는 대개 참문어라고 하는 종류이고, 남해안에서 주로 잡히는 걸 돌문어라고 한다. 과학적인 분류는 아니라고 한다. 그렇지만 동해안 문어는 좀 크고 값이 두 배다. 감칠맛이 더 좋기 때문이다. 남해안 문어는 좀 작고 값도 싼 편이다. 시장에서 살아 있는 채 팔리는 건 대개 작은 남해안 문어다. 동해안 문어는 보통 죽은 채 유통된다.

고르는 법이 있다. 산 것이야 뭐 보탤 말이 없다. 죽은 것이라면 색깔이 붉은 기운이 띠고 선명한 게 싱싱하다. 회색이 돌거나 창백하면 좀 오래된 것이다. 아주 큰 동해안 문어는 그다지 맛있는 경우가 드물다. 짜서 불편한 경우도 많다. 3~4kg 짜리가 아주 알맞다. 요새 문어가 아주 비싸다. 경상도 내륙에서 주로 먹던 것이 이젠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고급 어종에 대한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날도 수상한데 문어 삶아서 차가운 소주 한 잔, 아니면 막걸리를 마시고 싶은 날이다. 어허!


박찬일 | 소설을 쓰다가 이탈리아에 가서 요리학교 ICIF, 로마 소믈리에 코스와 SlowFood 로마지부 와인과정을 공부했다. 시칠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한국에 돌아와 이탈리아 레스토랑 ‘뚜또베네’ ‘트라토리아 논나’ 등을 성공리에 론칭시켰다. 지은 책으로 <박찬일의 와인 컬렉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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