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손자병법ㅣ지피지기 백전불태 ②
캠핑 손자병법ㅣ지피지기 백전불태 ②
  • 글 서승범 기자|일러스트 김해진
  • 승인 2013.06.07 16: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연으로 두 뼘쯤 다가서자

지난 호에서는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실패하지 않는다면서 자신의 캠핑 스타일을 추구하라고 했다. ‘나’를 알았으면 ‘적’도 알아야 하는 법. 도대체 캠핑이란 무엇이냐. 사실 별 것 없다, 그저 자연에 조금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 중요한 건 ‘지금보다 조금 더’라는 사실.


오늘도 변함없이 인터넷 쇼핑몰의 장바구니 혹은 위시리스트에 담긴 캠핑 장비를 보며 춘곤증을 이겨내는 당신에게 물어보자. 캠핑이란 무엇인가? 정답은 없다. 당신이 생각하는 답이 당신의 정답이다. 그게 바로 지난 호에서 약 2,500자로 강조한 바였으니.

그래도 나날이 늘어나는 캠핑 인구와 줄어들지 않는 캠핑 열풍을 생각하면 그래도 캠핑의 정의에 대해 어느 정도 경계는 지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캠핑이란 결국 자연과 좀 더 가까워지잔 얘기 아니겠는가? 여기에 굳이 ‘두 뼘쯤’을 넣은 이유는, 한 뼘은 아쉽고 세 뼘은 너무 멀어 보여서다. 적당히, 말하자면 각자의 생각과 형편에 맞게 적당히 다가서자는 거다.

캠핑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해
‘캠핑 손자병법’을 시작하면서 ‘캠핑은 가정의 중대사’라고 했다. 물론 ‘전쟁은 나라의 중대사’라고 한 손자의 말에서 가져왔다. 손자의 말을 다시 곱씹어보자. 전쟁에 대한 의견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로 나뉜다. 전쟁을 하자는 쪽과 말자는 쪽. 시대와 왕조를 막론하고 전쟁을 앞둔 조정의 많은 대신들은 주전파와 화평파로 나뉘어 설전을 벌였다.

손자의 말은 찬성도 반대도 아닌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쟁은 국가의 존망을 가르는 중대사이므로 평소에 신중하게 준비를 하고, 전쟁을 해야 한다면 속전속결로 치르되, 손실을 최소화해야 백성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 승리든 평화든 마음만으로 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손자는 전쟁을 명분이 아니라 전쟁으로 보았다. 이것이 손자의 위대함이다.

캠핑이 자연을 벗하기 위한 것임은 분명하다. 캠핑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자연을 즐기는 숱한 방법 가운데 때와 장소를 잘 고르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이유는 때와 장소를 ‘제대로’ 고르면, 어지간한 익스트림 스포츠 저리가라 할 정도로 스릴이 넘치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캠핑이란 자연을 곁에 두고 즐긴다는 것, 동의하시나?

그런데 자연을 즐긴다는 것, 자연을 벗한다는 것, 자연에 다가선다는 것이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난이도로 나뉘고 각각은 그만큼 다른 즐거움과 짜릿함을 선사한다. 어느 수준으로 즐길 것인지는 전적으로 각자 알아서 판단할 몫이다. 다만, 그 판단에 약간의 보탬이 되고자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내가 알고 있는 캠핑이, 진짜 캠핑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단 얘기다.

잠깐, ‘두 뼘쯤’에 대해 말하고 넘어가자. 토요일 오전에 캠핑 장비를 챙겨 아이들과 함께 출발해 점심 전에 세팅을 완료하고, 아이들과 함께 반나절을 보낸 후 일요일 오전에 사이트를 정리해 차가 막히기 전에 ‘컴백홈’. 이건 ‘한 뼘’이다. 출발이 토요일 오전이 아니라 금요일이거나, 일요일 오전이 아니라 밤에 마무리한다고 해도 ‘한 뼘쯤’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형태의 캠핑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나도 이런 캠핑이 주류를 이룬다. 단지, 이게 다는 아니란 얘기다. 그럼 뭘 어쩌라고.

반 뼘 더 나아가면 새로운 세상이 있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스물여덟의 나이에 고향 근처의 호숫가에 작은 통나무집을 짓고 자연과 교감을 나누며 2년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는 호숫가 생활과 느낌, 생각들을 글로 옮겨 책으로 남겼다. 사실 나는 그 책을 통해 그를 알게 되었다. 짐작했겠지만, 그 사람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이고 책은 <월든>이다. 1845년에 시작된 숲 생활은 1847년에 끝났다. 그렇다고 숲에만 머물렀던 건 아니다. 메인 주 산악지역으로 2주에 걸친 캠핑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월든>은 숲 생활의 기록이자, 자연에 대한 예찬이며, 문명에 대한 풍자로 평가된다.

소로우가 ‘19세기 가장 중요한 책 중의 하나’로 꼽히는 <월든>을 쓴 월든 호수는 그가 태어나 자란 고장에 있다. 자연과 교감하기 위해 이국적인 풍경을 찾아 멀리 떠나지 않아도 된다. 28달러를 들여 지은 그의 오두막에는 침대와 탁자, 책상, 의자, 솥, 프라이팬, 나이프와 포크, 접시, 컵, 기름단지 정도가 있었다. 모두 손수 만들거나 주워왔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폴리카보네이트와 티타늄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다.

소로우의 생각과 방식이 유일한 정답이라는 것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범답안이라는 것도 아니다. 자연 쪽으로 세 뼘 혹은 네 뼘 다가선 이들도 있음을 떠올리자는 것이다. 문명 속 일상에서 겨우 한 뼘 떨어진 곳에서 그것이 전부인 양 만족하지는 말자는 얘기다. 모든 캠퍼가 소로우처럼 자연에서 캠핑을 한다는 건 가능하지도 않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모두가 시인인 사회는 재미없다. 하지만 시인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삭막해서 숨이 막힌다. 일상에서 한 뼘쯤 벗어났으나 반 뼘 더 나아간 어딘가 있을 새로운 세상을 잊지 말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