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SILKROADㅣ이란 시라즈
BEYOND SILKROADㅣ이란 시라즈
  • 글 사진 박하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 승인 2013.05.2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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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 영원을 사는 하페즈의 고향

▲ 시내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아르케 카린 캄.

“5월에 시라즈를 방문하는 사람은 고향이 어디인지조차 잊을 것이다”라고 극찬했던 유명한 시인 사디(Sadi)의 말이 전해지는 곳, 시라즈(Shiraz). 해발 1486m 고원에 위치한 이곳은 4천년의 긴 역사를 지닌 고도면서 잔드(Zand) 왕조가 페르시아를 다스리던 1753년부터 1794년까지 이 나라의 수도기도 했다. ‘바킬’ 사원을 비롯한 당시의 아름다운 건축물은 지금도 자리를 지키며 빛나고 있으며, 수천 년 동안 지방무역의 중심지로 번성하면서 가꿔 온 정원은 도시의 또다른 상징이기도 하다.

페르시안 블루로 빛나는 모스크의 돔들의 형태는 다른 지역에 비해 개성적이고, 모스크 내부는 현란한 유리장식으로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또 가는 곳마다 만날 수 있는 활기찬 전통 바자르에서는 ‘페르시아의 시장’ 같은 음악 속에 빠져드는 듯한 분위기가 여행자들의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 어디 그뿐인가. 이란의 대표적 시인 사디와 하페즈의 시향도 곳곳에서 묻어난다.

▲ 벽화가 그려져 있는 아르케 카린 캄 성벽.

▲ 하페즈의 돔 앞에서.

700년 동안 사랑받는 국민 시인
하페즈와 사디를 기리는 공원은 서로 떨어져 있다. 두곳 모두 가족끼리 연인끼리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다. 엄숙한 표정으로 장미꽃 한 송이 씩을 들고 와 대리석 무덤에 바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들의 시가 새겨져 있는 대리석 관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애통한 소리로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은 기도가 아니라 하페즈나 사디의 유명한 시를 낭송하는 것이었다.

쉽고 서정적인 시를 써온 하페즈는 14세기 때의 시인이다.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그는 궁정시인이 되어 시라즈의 여러 통치자들에게 총애를 받아왔다. 특히 “시라즈의 미녀가 내 마음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뺨에 있는 점을 바꾸어 주리니 사마르칸트도 부하라도…”로 시작하는 시는 지금까지도 여러 사람의 입으로 낭송되고 있으며, 티무르와의 조우를 둘러싼 일화는 현재에도 회자되고 있다.

▲ 바자르 풍경.

▲ 민예품을 파는 상점의 쇼윈도우.
페르시아어권 전역에서 하페즈의 시가 특별히 널리 유포되고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솔직함과 단순함에 있다. 운율을 따르고는 있지만 인위적인 세련미를 배제한 소박한 일상어로 시를 구사했으며 꾸밈 없는 쉬운 표현과 통속적인 이미지를 사용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인간에 대한 사랑, 위선과 둔감성에 대한 경멸, 일상적 체험 등을 신과의 합일 추구로 연결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서양에서도 그의 시는 널리 유행됐으며, 수많은 번역본들이 나와 있다. 독일의 대시인 ‘괴테’는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자연과 사랑을 노래한 하페즈의 시가 500년이나 앞서 있었던데 자극을 받아 서정적인 연작시를 쓸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이란에는 ‘모든 가정에는 두 가지 물건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그 첫 번째는 코란이고, 두 번째는 하페즈의 책이라 할 정도니 그 명성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유명하다 한들 7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의 시를 사랑하고 눈물을 흘려가면서 낭독하는 연유는 무엇일까? 이란사람들은 하페즈의 시를 코란 못지않은 삶의 지침서로 여긴다. 몽골족이 침략했을 때 하페즈는 겉으로 울분을 토하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자신의 시로 답답한 속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14세기 사람인 하페즈가 아직도 이란사람들에게서 사랑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라즈의 야경
저녁 무렵이면 여행자들이 꼭 들려봐야 할 곳이 있다. 분위기 좋은 찻집 ‘카조우 케르마니(Khajou-e-Kermani)’가 바로 그곳이다. 14세기 페르시안 시인의 이름을 딴 곳인데, 시라즈로 들어가는 입구의 ‘코란 게이트’ 옆 언덕위에 있다. 이 찻집 근처에는 ‘자한 나마 가든(Jahan Nama Garden)'이라는 공원이 있어 해질 무렵 날이 시원해지면 가족, 연인 등 나들이 나온 사람과 먼길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 가는 곳이기에 항상 붐빈다.

▲ 시라즈 번화가에 있는 모스크 앞 거리 풍경.

▲ 바킬 모스크에서.

언덕 위의 야외 찻집에 앉았다. 내려다보이는 시라즈 시가지의 불빛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는 시각이었다.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앉아 물담배를 피우고 차를 마시거나 야릇한 향내가 나는 ‘팔로데’라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그때 한 아가씨가 옆에 다가와 앉으면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마네’라는 이 여대생은 수줍은 기색 없이 같이 사진까지 찍어달라고 했다. 요즘 이란의 젊은 여성들은 생각과 달리 생기발랄하다는 것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물담배를 피우던 같이 온 남자 친구가 자기 테이블로 초대하기에 합석을 했다. 의사소통은 매끄럽지 않았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거창한 철학과 사상을 논하는 자리도 아니니 손짓 발짓으로도 충분하다.

▲ 사디 무덤 앞의 순례자들.

▲ 화려한 타일장식이 돋보이는 주택가의 오래된 모스크.

그들과 나눈 얘기 중에서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지도를 보면 인도양의 북쪽 아라비아 반도와 이란, 파키스탄 영토가 맞닿은 바다가 있다. 그리고 이 바다의 이름은 ‘아라비안 해(Arabian Sea)로 표기돼 있다. 그런데 이게 잘못됐다는 거다. ‘페르시아 해(Persian Sea)’가 올바른 지명이니 한국에 돌아가면 사람들에게 꼭 알려달라고 핏대를 올리며 말했던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충분히 이해 되는 대목이다. 한국과 일본이 동해바다의 표기 문제로 옥신각신 하고 있는 것처럼 이곳에서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평소 이란 사람들은 자신들은 범 이슬람이기는 하지만 아랍이 아니라는 것을 외국인들을 대할 때마다 자주 강조한다. 즉 아랍인이 아니라 아리안 일종이라는 것이다. 아랍권의 대부분이 수니파인데 비해 자신들은 전체 무슬림 중의 10퍼센트에 불과한 시아파의 종주국으로 강인한 영혼과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 하페즈의 무덤 앞에서 시를 낭송하면서 순례하는 사람들.

▲ 카조우 케르마니 까페 풍경.

물담배도 몇 번 빨아보고, 이메일 주소도 주고받고, 서로 눈을 마주하며 웃는 가운데 시라즈 차이하네의 밤은 깊어만 갔다.

▲ 사디 공원에서 책을 읽고 있는 여인.

▲ 코란 게이트 옆에 있는 또 다른 시성 카조우 케르마니 석상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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