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땅 뚫고 올라오는 봄의 전령사
▲ 변산바람꽃.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3~4월에 개화하며 멸종위기 식물로 보호받고 있다. 변산바람꽃은 변산반도에서 처음으로 채집해 한국특산종으로 발표해 학명도 발견지인 변산에서 이름을 따왔으나 지금은 제주와 설악산 등 전국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
해마다 야생화의 꽃 문을 여는 첫 꽃의 이름이다. 제주의 눈밭에서 피어난 복수초 사진이 올라오면 복수초와 변산바람꽃 만날 날을 헤아려보게 된다. 지난해 복수초를 처음 만났던 날의 사진 폴더를 찾아보니 2월 19일이다. 이번 겨울은 유난스레 추웠으니 올해 꽃 피는 시기는 좀 늦겠지 미루어 짐작해보지만, 겨우내 손꼽아 기다렸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꽃자리로 종달음을 놓는다.
2월 15일, 자투리 시간이 생겨 꽃밭을 둘러보기로 했다. 화개에 사는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의 이원규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섬진강변에서 가마우지 떼와 놀고 있는 중인데 복수초 꽃 보러 가는 길이라면 열일 제쳐두고 따라 나서겠단다.
구례 토지면에 있는 우리식당에서 만나 다슬기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원규 시인의 애마 바이크는 잠시 휴식을 취하라고 세워두고 내 차로 꽃밭을 향해 달렸다. 아직 꽃 필 때가 아니니 오늘 꽃 보기는 기대하지 마라, 길 눈여겨 두었다가 혼자 찾아올 수 있게 꽃길 안내 하는 것이라 다짐을 두며 복수초 꽃밭이 있는 골짜기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런데 어인 일인가! 생각지도 않았던 노란 복수초 두 송이가 피어 있다. 아직 활짝 피어나진 않았지만 꽃문을 열어 환한 인사를 건넨다. 오, 이런. 꽁꽁 언 땅을 뚫고 나와 황금술잔 같이 노랗게 빛나는 꽃의 경이로움은 저절로 꽃 앞에 무릎을 꿇게 한다. 야생의 복수초를 처음 만나는 이원규 시인과 함께 한 올해의 꽃맞이는 그 어느 때보다 감격스럽다. 이원규 시인의 가슴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환히 피어날 복수초.
꽃밭 골짜기에는 복수초보다 조금 늦은 변산바람꽃 여린 싹들도 영차영차 고물고물거리며 언 땅을 밀어올리고 있다. 행여 밟을세라 조심조심 꽃밭을 빠져 나오는 것으로 올해의 햇꽃 인사를 마쳤다. 복수초를 시작으로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만주바람꽃, 노루귀, 얼레지 차례로 피어 골짜기를 밝히면 그 꽃빛 받아 섬진강엔 매화, 산수유, 벚꽃 흐드러지는 찬란한 봄날이 시작되리니.
김인호 | 시인·시집 <섬진강 편지> <꽃 앞에 무릎을 꿇다>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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