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러닝 |칠레 아타카마 사막 레이스 ①
트레일러닝 |칠레 아타카마 사막 레이스 ①
  • 글 사진 유지성 본지 아웃도어 자문위원·오지레이서
  • 승인 2013.04.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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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찾아 떠나는 혹독한 여행

▲ 끝없이 이어진 모래언덕은 보는 사람과 달리는 사람 모두를 즐겁게 만든다.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미국 애틀랜타를 경유, 칠레 산티아고를 거쳐 국내선을 타고 깔라마에 착륙. 거기서 다시 한 시간 반을 버스로 달려 도착한 곳은 칠레 북부 산페드로 아타카마 사막이다. 이 척박한 땅에 149명의 선수가 모여들었다. 바로 2013 아타카마 사막 레이스를 달리기 위해서다. 이중 한국 참가자는 12명이다. 세계 4대 사막레이스 시리즈 대회 중 하나인 이번 대회는 고산병이 찾아오는 해발 2400~3000m 이상의 고산지대를 계속해서 넘나들어야 하는 혹독한 레이스다. 대회를 둘러싼 환경이 이렇다보니 극한의 도전을 경험하기 위해 출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해발 2400~3000m 이상의 고산지대를 계속해서 넘나들어야 하는 혹독한 레이스가 계속된다.
첫날 첫 출발이 가장 중요하다
혹독하고 냉엄한 대자연 앞에서는 누구나 겸허해지는 법이다. 대회 출발선에 선 모든 선수들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꿈을 위해 기도 한다. 어떤 이는 개인의 안녕을, 다른 이는 가족의 행복을, 세계의 평화를, 이 대회의 무사 귀환을 기도한다. 그리고 출발 소리와 함께 환호와 괴성을 지르며 레이스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들뜬 분위기에 휩싸이면 안 된다. 여러 번의 경험상 첫날 첫 출발 만큼 중요한 순간도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날 대회에 같이 출전한 우리 한국팀은 첫 번째 줄을 점령하고 출발 신호와 동시에 우르르 뛰쳐나갔다.

처음 출발 캠프는 해발 2900m에 위치하고 있지만 초반 구간을 달리다보면 금세 해발 3000m를 훌쩍 넘어 버린다. 몸이 풀리기도 전에 선두에서 한참을 달려서인지 숨이 가빠왔다.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속도를 죽이자 이내 진짜 선두권 선수들이 순식간에 나를 앞지르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상위 탑 5에 들어가는 선수들의 기록을 보면 사막이건 정글이건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한 시간에 10~13km를 달린다.

첫날 35km 코스는 해발 2800m 정도에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거리도 짧고 코스도 좋았기 때문에 두 번째 체크포인트까지 30위대 기록으로 컨디션을 조절하며 달렸다. 그러나 방심했던 탓인지 경치를 감상하며 유유자적 가다가 완만한 언덕에서 왼쪽 발목이 삐끗했다. 동시에 발목 뒤쪽 아킬레스건 근처에서 “뻑”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레 발목을 돌려봤다. 다행히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황급히 워밍업 로션을 바르고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시도해 일단 붓기는 잡았지만 뜻하지 않은 부상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 이른 아침 차가운 계곡물은 레이스 중 꿀맛 같은 휴식이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 또다시 지옥 같은 더위가 시작된다.

▲ 계곡 구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필자.

둘째 날, 데스밸리의 위용에 함몰되다

대회 둘째 날 45km는 계곡에서 물속을 누비며 산을 오르는, 아타카마사막의 가장 아름다운 곳을 달리는 코스였다. 하지만 문제는 전날 부상당한 왼쪽 아킬레스건이었다. 아침 일찍 얼음 같이 차가운 계곡물을 건널 때는 냉각 효과 덕에 버틸 수 있었지만 해가 뜨면서 날이 더워지자 통증이 몰려왔다. 그렇다고 해서 진통제를 함부로 먹어서도 안 된다. 초반부터 진통제에 의존할 경우 꼭 필요한 상황에서 약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드디어 아타카마 사막의 데스밸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위대한 자연은 사람을 한없이 작아지게 만든다. 가던 길을 멈추고 멍하니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수백 미터 길이의 모래언덕은 보는 사람과 달리는 사람 모두를 즐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모래언덕을 내려온 후 또 다시 아킬레스건의 통증이 몰려와 속도가 줄어들었고 뜨거운 아타카마 사막의 강렬한 햇살을 버텨야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위까지 먹어 나머지 길을 가는데 상당한 애를 먹어야 했다.

▲ 아타카마의 낮 기온은 40~45도 사이다. 하지만 고산지대의 특성상 체감은 사하라의 50도에 육박한다.

▲ 소금과 흙 등이 서로 엉겨 붙어 딱딱하게 굳은 악마의 발톱 구간은 참가자들을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셋째 날, 오지레이싱의 극한을 맛보다

악마의 발톱구간과 모래언덕, 소금지역, 바위와 건조지역으로 구성된 셋째 날의 40km 구간은 참가자 모두에게 가장 힘들었던 코스였다. 소금과 흙 등이 서로 엉겨 붙어 딱딱하게 굳은 악마의 발톱 구간을 지나 작은 모래언덕들을 넘은 후, 소금밭과 악마의 발톱 구간을 다시 가로지르게 만들어 참가자들을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해발이 높으면 기온이 높지 않아도 상당히 덥게 느껴진다. 아타카마의 낮 기온은 40~45도 사이. 하지만 체감은 사하라의 50도 이상이다. 결국 주최측에서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의 더위가 몰려와 제한 시간을 긴급 조정하기도 했다.

사막은 아무리 더워도 습기가 적어서 그늘에만 있으면 시원하다. 체크포인트에서 쉬고 있으면 저 멀리 모래지역을 통과하여 멀리서 오는 참가자들이 보인다.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엉금엉금 한 발짝씩 내딛는 모습은 영락없는 좀비의 모습이다. 마치 좀비영화 촬영장에 와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 멀리 체크포인트가 보인다. 다쳐서 치료 받는 참가자부터 쉬는 사람까지 전쟁터의 야전병원을 방불케 한다.

▲ 끝없이 펼쳐진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

이날도 역시 중반 이후부터 아킬레스건 통증이 시작돼 속도를 절반 이하로 줄이고 걷는 시간이 많아졌다. 본격적으로 샤워기를 만들어 더위에 대비하기도 했다. 사막에서 샤워기는 물병 뚜껑에 구멍을 뚫어 뿌리는 것인데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사막이라는 극한의 환경은 서로를 더욱 아끼게 만든다. 나보다 힘든 모습의 참가자를 만나게 되면 샤워기를 이용해 물을 뿌려주면서 간다. 쓰러져 있는 참가자들을 보면 응급처치로 포도당이나 소금을 먹여주기도 한다. 대회 중간에 있는 체크포인트에서 맞닥트리는 광경은 야전병원이나 마찬가지다. 그곳에는 다쳐서 치료 받는 참가자부터 쉬는 사람까지 아수라장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 와중에 나는 틈틈이 새우잠을 잤다. 틈나는 대로 꾸준히 관리를 해서인지 다행히 아킬레스건 부상은 더 이상 악화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마지막 롱데이를 완주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할 뿐이었다.

대회 3일 째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아타카마의 밤하늘을 바라봤다. 은하수와 수많은 별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듯 나를 향해 빛나고 있었다.

▲ 참가자들은 아무리 혹독한 환경에서도 뛰고 걷고를 반복한다. 레이스는 곧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 이번 2013 아타카마 사막 레이스에는 12명의 한국 선수가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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