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사누키 우동
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사누키 우동
  • 글 사진 박찬일 기자
  • 승인 2013.04.16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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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룩 후룩, 간결하고 맑은 맛

▲ 사누키 우동은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맑은 국물이다.

다카마쓰(高松)는 왜 갔어요?
우동 먹으러요.
아니, 우동이야 서울에도 있을 텐데.
바람이야 지구를 구석구석 돌아 내게 온 것은 아닌가요?
그래도….
우동 아니면 라멘이라도 어때요. 안녕히 계세요.

서울의 어느 잡지 에디터와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다카마쓰다. 오사카나 도쿄, 후쿠오카도 아니고 이름도 잘 외워지지 않은 다카마쓰. 간사이공항에 내려서 출입국심사를 받는데,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다카하시. 응? 나도 모르게, 흔해 터진, 일본인의 성이 나온다. 다카마쓰라고 정정하자, 마스크를 쓴 직원이 손으로 국수 뜨는 흉내를 내면서 말한다. 우동? 짜식.

다카마쓰는 쉬이 갈 곳은 아니다. 일본 본섬(혼슈)의 밑에 있는 커다란 섬인 시코쿠에 있는 카가와현의 한 도시다. 시코쿠는 또 뭐람. 여행작가 김남희가 순례길을 걸었다고 하여, 아하, 그런 섬이 있구나 했던, 안 갈 수도 있었던, 구로구 항동이나 마천동 같은 곳처럼 내가 평생 모르고 살 곳 같은 땅이긴 마찬가지인, 인연과 내가 모르는 예정된 삶의 항로를 보고 화들짝 놀라게 되는.

▲ 반죽을 하는 젊은이들이 있어서 물으니 이곳 우동집은 오후 8시부터 연단다.

우동의 도시 다카마쓰
다카마쓰는 아시아나항공이 일주일에 3회 다닌다. 주말 끼고 급히 가느라 오사카의 간사이를 돌고 돌아 닿았다. 간사이에 내려 리무진으로 또 세 시간 반이다. 안내장에 그렇게 시간이 적혀 있었는데, 칼 같이, 부러 시간을 맞춘 것처럼(처럼이 아니라 실제 그랬을 것) 딱 세 시간 반 만에 도착한다. 우동의 도시라고 해서, 우동 조형물이라도 주렁주렁 도시를 장식할 것 같았는데 그런 촌티는 없다. 역전에 떡 하니 도쿠시마 라멘집이 있는 걸 보니, 이곳이 우동 도시가 맞나 싶다.

일본의 우동하면 시코쿠 사누키 우동이다. 사누키란 이 시코쿠 지방을 이르는 고어다. 경주가 예전엔 서라벌로 불렸던 것처럼. 행정 지명은 바뀌되, 사람들의 의식에 새겨진 오래된 이름은 남는다. 여전히 우리는 양재동보다 말죽거리가 익숙한 세대다.

도시는 깔끔하다. 자전거 도로가 워낙 좋아서인지 오토바이를 한 대도 못 봤다. 난 시끄럽지 않다면 오토바이도 좋아한다. 그런데 시끄럽지 않은 건 본 적이 없으니, 묘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온통 자전거뿐인 이 도시가 좋아졌다.

▲ 후루룩 후룩, 우동집에서 들리는 소리는 참으로 은근하면서 역동적이다.

시내는 우리가 다른 도시에서 흔히 보는, 아케이드형의 유럽형 상가로 사통팔달 연결되어 있다. 주도로에는 편의품과 고급품 상점이 줄을 잇고, 좌우로 뚫린 보조 도로에는 식당과 술집이 들어서 있다. 주말인데도 불황이어선지 사람들이 많지 않다. 호텔에서 ‘우동지도’를 준다. 시내의 맛있는 우동집이 망라되어 있다. 일본어라고는 ‘하이’밖에 모르는 두 중년이 손짓발짓으로 우동집을 찾았다.

골목길을 돌고 돌아 멋진 집을 하나 발견! 그러나 문을 닫았다. 저녁 6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불황으로 문을 아예 닫은 것일까. 다시 골목 순례 끝에 무환(舞丸)이라는 집을 본다. 그런데 역시 반쯤 문이 닫혀 있다. 반죽을 하는 젊은이들이 있어서 물으니 이곳 우동집은 오후 8시부터 연단다. 우동은 낮 장사, 라멘은 밤 장사라는 내 상식이 또 깨진다. 우동도 밤 장사가 흔한 것이다. 다시 시간에 맞춰 가니 벌써 사람들이 가득하다. 명물집이라는 느낌을 훅 받는다. 라멘집처럼, 라멘그릇에 침 튀겨가며 되도 않는 소리를 지르는 것이 싫은 나는, 조용하게 후루룩 소리만 가득한 우동집이 마음에 든다. 우동에는 술을 별로 곁들이는 법이 없는 모양이다. 조용히 국물을 마시고 면을 먹는다.

▲ 매화 향기에 취해서 잠시 넋을 잃는다.
우루메부시로 국물 우려내
사누키 우동은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맑은 국물이다. 그런데 이 ‘다시’라고 부르는 국물의 재료가 예상 밖이다. 가츠오부시를 쓸 줄 알았더니, 천만의 말씀이란다. 우루메부시와 사바부시를 쓴다고 한다. 여기에 다시마만 더한다. 우루메가 뭔가 사전을 찾아보니 정어리다. 둘 다 등 푸른 생선으로 훈제하여 말린 양념을 쓰는 거다. 거의 ‘미원’을 넣은 것 같은 감칠맛은 여기서 나온다. 우리가 생각하듯 국물을 낼 때는 무도 넣지 않는다. 간결하고 맑은 맛이다.

대개 일본 면 요리의 국물은 짠데, 사누키 우동 스타일은 간간한 정도이고 맑다. 가케우동이라고 하여 국물을 넉넉히 잡아 말아주는 방식이 흔해서 초보자들도 익숙한 맛이다. 국물이 까무잡잡하고 진하고 짠 건 간토오식이라고 하여 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우동이라고 한다. 대개는 가케우동식으로 말아먹는 게 아니라 국물이 소스처럼 진해서 면을 따로 내어 찍어먹는 식이라고 한다.

우동집에서 들리는 소리는 참으로 은근하면서 역동적이다. 후루룩 후룩, 서로 박자를 맞추듯 이어진다. 일본에선 국수를 먹을 때 소리를 내어야 예의바른 짓이다. 참, 보기 좋은 광경이다. 일본의 스파게티집에서 그렇게 국수를 먹었다가는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우동집에 곁들이라고는 튀김과 오뎅뿐이다. 튀김은 우동에 얹어내기도 하고, 따로 팔기도 한다. 기린 병맥주 한 병에 오뎅과 튀김을 먹는다. 오뎅이 특이해서 국물은 한 방울도 주지 않는다(오뎅에 묻어서 들어온 것은 빼고). 한국에서야 오뎅이라면 국물 맛인데 말이다. 오뎅통에 보니 걸쭉한 국물이 끓는데, 말이 되어야 한 그릇 얻어먹을 텐데 하고 입맛만 다시고 만다.

다카마쓰는 우동의 리쓰린 공원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고, 에도 시대를 열었을 때 초기에 만들어진 공원이다. 잘 깎은 정원수가 일품이고, 매화 향기에 취해서 잠시 넋을 잃는다. 막부의 영광도, 사무라이의 칼에 비친 월광도 없이 리쓰린 공원은 쓸쓸하다. 봄빛이 한 줄기 비치는 아무도 없는 대낮의 매화밭이라니.

우동에 우동, 이 음식이 묘하게 질리지 않는다. 우동 한 그릇에 매화 한 송이를 보러 너무 멀리 간 것은 아닌가 했다. 돌아오는 길, 리무진 버스가 달리는 혼슈의 해안선에서 봄이 슬슬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박찬일 | 소설을 쓰다가 이탈리아에 가서 요리학교 ICIF, 로마 소믈리에 코스와 SlowFood 로마지부 와인과정을 공부했다. 시칠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한국에 돌아와 이탈리아 레스토랑 ‘뚜또베네’ ‘트라토리아 논나’ 등을 성공리에 론칭시켰다. 지은 책으로 <박찬일의 와인 컬렉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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