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손자병법ㅣ지피지기 백전불태 ①
캠핑 손자병법ㅣ지피지기 백전불태 ①
  • 글 서승범 여행작가|일러스트 김해진
  • 승인 2013.04.1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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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번 나가도 즐거우리라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전쟁에서 위태롭지 않다. 캠핑 역시 마찬가지다. 캠핑을 알고 나를 알아야 캠핑 과정에서 맞닥뜨릴 몇 가지 지난함을 극복할 수 있다. 적의 형편보다는 아군의 형편을 파악하는 것이 더 쉽다. 스스로 묻자, 나는 어떤 스타일의 캠핑을 즐기고 있는가? 중요한 건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 것이다.
 

혼자서는 고기집에서 고기를 굽는 것 빼고는 어지간한 활동은 혼자 하는 편이 익숙하다. 그러다보니 괜찮은 기사식당도 여럿 알게 되었고, 평일 오전의 극장을 감도는 고요함과 평화로움, 무엇보다 조조할인이라는 저렴함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가는 캠핑도 좋지만, 그건 캠퍼로서가 아니라 아빠로서다. 진짜 캠핑은 혼자 가야 제맛이지, 라고 생각했다. 쭉쭉 뻗은 침엽수림 아래 절대 어둠을 밝히는 작은 불과 조용하게 내쉬는 숨소리와 간간이 부는 바람소리가 소리의 전부인 그 순간을 언제부턴가 꿈꿔왔다. 참으로 호젓하지 않은가?

자신이 좋아하는 캠핑을 찾아라
지난 호에 ‘전쟁에서는 승리를 귀하게 여기지, 전쟁을 오래 끄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손자의 말을 소개했다.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이기려고 하는 전쟁, 빨리 이기고 끝내야지 오래 끄는 천치가 어디 있겠나 싶었다. <손자병법>의 ‘제3편 모공(謨功)’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잘된 것 중에 잘된 용병이 아니며, 싸우지 않고 적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용병이 잘된 것 중의 잘된 용병이다.” 두 말을 요약하면 ‘전쟁의 목적은 승리다. 따라서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 가장 좋다’ 정도로 정리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건 뭐? 초딩들도 다 아는 ‘지피지기 백전불태’가 나온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

아내로부터 ‘나홀로 캠핑’을 허락 받은 어느 날, 늦가을의 평일 이른 오후에 산 속 캠핑장에 들어 미니멀 모드로 세팅을 마쳤다. 텐트 안의 매트리스와 침낭, 소형 가스스토브와 작은 코펠, 헤드랜턴 하나, 그리고 먹을거리 몇 개.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인가. ‘자아와의 대면’ 따위는 꿈꾸지도 않았지만, 주린 배를 채우고 맥주를 홀짝거리며 루시드 폴의 소설을 읽다가 어두워지면 잠깐 산책을 하고 이런저런 공상과 상상을 즐기다가 일찍 잠드는 것 정도는 계획했다. 하지만 호젓한 ‘나 홀로 캠핑’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어두워지면서 산골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생각보다 거셌고, 오랜만의 인적을 느낀 고양이 몇 마리가 눈에 불을 켠 듯 멀찌감치 떨어져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텐트 속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덧붙인 글은 ‘외롭다’였다. 아이 둘이 선사하는 번잡함에서 벗어나 ‘제발 좀 외롭자’를 외쳤지만, 산 속에서 만난 외로움은 깊이가 달랐다. 산 속에서 혼자 밤을 보내는 것에 대해 모르면서 막연하게 공경했던 것이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몰랐던 거다. 지금? 이틀 이상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난 산 속으로 달려갈 작정이다.

캠핑은 결혼과 같다. 요리를 좋아한다면 광파오븐을 사고 몇 가지 주방기구에 관심을 더 기울일 것이고, 영화 마니아라면 전자레인지를 포기하고 텔레비전과 오디오 시스템에 예산을 더 투입할 것이다. 여행을 좋아한다면 집을 줄이고 차를 업그레이드할지도 모르겠다. 몰취미스럽게, 이 모든 걸 갖추는 것은 비용도 비용이지만, 참으로 미련한 짓이다.

캠핑도 마찬가지다. 널찍한 텐트와 나란히 세팅된 테이블과 안락해 보이는 의자들, 어른 키 높이까지 솟은 키친 테이블에 걸린 갖가지 조리기구들, 하얀 재가 살짝 내려앉은 차콜과 그 위 주철 그릴에서 익어가는 소시지와 스테이크, 노오란 불빛으로 분위기를 내는 가솔린 램프와 행복한 표정의 아내와 아이들…, 이건 광고에나 나오는 이미지다. 일단 저 짐들을 베란다에서 꺼내 트렁크에 싣는 과정만 생각해도 중노동이다. 도착 후 세팅까지는 말할 것도 없고.

선택과 집중 그리고 적응
필요한 건 선택과 집중이다. 문화의 정수는 음식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무겁더라도 더치오븐은 물론 스킬렛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숲에서 마시는 커피가 술 한 잔보다 귀하다면 휴대용 그라인더와 핸드드립퍼 혹은 핸드프레소 그리고 질 좋은 원두를 챙겨 마땅하다. 가만히 앉아 솔바람을 만끽하고 싶다면 편안한 의자와 부드러운 담요 정도면 되겠다. 풀세트를 갖춰 경험하고 필요치 않은 장비를 빼는 것도 방법이나 비용 낭비가 심하므로 미리 계획을 세워 꼭 필요한 장비를 하나씩 갖춰가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는가. 비유컨대, 손자가 말한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인 셈이다.

문제는 뭐냐? 자신이 원하는 캠핑 스타일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남이 사는 것 따라서 장비를 마련했고,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 뭘 물으시나. 답은 그대 안에 있는 것을. 답을 찾아도 갈 길은 멀다.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나의 외로움이 호젓함으로 바뀌기까지 반년의 시간, 횟수로는 서너 번의 캠핑이 더 필요했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남의 캠핑 흉내만 내다가는 이내 캠핑이 지겨워질 것이다. ‘내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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