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길|안산 풍도 야생화길
아름다운 우리 길|안산 풍도 야생화길
  • 글 사진 진우석 출판팀장
  • 승인 2013.04.1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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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풍도마을~은행나무~북배~선착장…약 5km 2시간 30분
그 섬엔 바람 대신 바람꽃이 있었네

▲ 꿩의바람꽃 군락지를 걷는 야생화 탐방객들.

풍도는 경기도 안산시에 속하는 작은 섬이다. 면적 1.84㎢, 해안선 길이 5km, 인구는 약 160명(2001년)이고 대부도에서 24km쯤 떨어졌다. 이름은 바람섬(風島)을 생각하기 쉽지만, 예로부터 단풍나무가 많아 풍도(楓島)라고 불렀다. 청일전쟁 때 이곳 앞바다에서 청나라 함대를 기습하여 승리한 일본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풍도(豊島)로 표기한 뒤로 우리 문헌에도 풍도(豊島)로 표기되어 굳어지게 되었다.

풍도는 수산자원이 풍부하다고 알려졌지만, 정작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섬 주변에 갯벌이 없는 까닭이다. 풍도의 풍요로움은 전혀 뜻밖에 장소에서 발견된다. 후망산(175m) 일대를 화려하게 수놓는 야생화가 그것이다.

▲ 야생화 산길이 시작되는 인조의 은행나무.

풍도(楓島)가 풍도(豊島)로 바뀐 사연
풍도 가는 배편은 인천항에서 하루에 한 번밖에 없다. 그래서 꽃구경을 하려면 섬에서 1박을 해야 한다. 일행이 많은 관계로 대부도와 다리로 연결된 영흥도에서 낚싯배를 빌렸다. 낚싯배 안의 작은 대합실에서 피난민처럼 실려 풍도로 가는 길이 재미있다. 다행히 바다가 잔잔하다. 40분쯤 가자 막사발을 뒤집어 놓은 듯한 작고 부드러운 풍도가 보인다. 아직 섬은 황량한 잿빛이지만, 저 안에 보석 같은 야생화가 자라고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풍도의 야생화는 자생지가 넓고 개체수가 많아서 유명하게 된 것도 있지만, 작은 풍도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이 두 종이나 있기 때문이다. 풍도바람꽃과 풍도대극이 그것이다.

▲ 후망산 고목 아래에서 볕을 쬐고 있는 풍도바람꽃.

▲ 배에서 바라본 풍도는 부드럽고 순하다.

풍도 걷기는 마을 위의 은행나무 위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후망산 야생화 군락지를 감상하고, 군부대에서 산 반대편 풍도대극 군락지와 바위가 아름다운 북배를 거쳐 해안을 따라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이 좋다.
풍도마을은 선착장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집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남쪽 육지를 바라보고 있다. 마을길로 접어드니 담벼락에 물고기, 문어, 조개 등이 그려져 있다. 그 안에 손바닥만 한 건물과 운동장이 보인다. 여기가 대남초등학교 풍도분교다. 학교는 작지만 역사가 무려 80년이다. 정문 옆 알림판에 아이가 그린 듯한 ‘입학 축하’ 그림이 붙어 있다. 알고 보니, 올해 3년 만에 입학식이 열렸다고 한다. 입학생은 한 명. 덕분에 풍도분교의 전교생이 두 명이 됐다. 그동안 한 명뿐이었던 것이다.

▲ 올해 3년 만에 신입생을 받은 풍도분교.

▲ 풍도분교의 귀여운 담벼락.

마을은 전체적으로 낡았고 계속 낡아지고 있다. 하지만 2012년 8월 ‘2012 경기도 서해 섬 관광 활성화 사업’ 일환으로 ‘풍도에 물들다’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벽화, 조형물 등이 세워지면서 조금은 밝고 명랑해졌다. 물고기가 그려진 골목길을 휘돌아 산비탈을 오른다. 동무재에 올라서자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기분 좋게 얼굴을 핥는다. 앞쪽으로 인조(仁祖)의 은행나무가 보인다.

500년 묵은 은행나무는 이괄의 난을 피해 풍도로 피난 온 인조가 섬에 머문 기념으로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어수거목(御手巨木)으로 부르며 풍도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지나는 배들은 이 은행나무를 보고 섬이 풍도임을 알았다. 특히 노란 단풍이 절정일 때 가장 아름답다고. 나무 아래의 샘을 주민들은 은행나무샘이라 부른다. 은행나무가 수맥을 끌어당겨 만든 특이한 샘으로 주변 여러 섬 중에서 가장 물맛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샘에서 넘친 물이 은행나무 앞을 늪처럼 만들었다. 그곳을 건너가면 산길이 시작된다.

▲ 낡아가는 풍도마을은 2012년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벽화, 조형물 등이 세워지면서 조금 밝고 명랑해졌다.

풍도에서만 자라는 풍도바람꽃과 풍도대극
가장 먼저 만난 꽃은 복수초다. 복수초 종류 중에서 가지복수초인데, 다른 곳보다 꽃이 크고 색이 진하다. 특히 꽃 아래에 복슬복슬 자라난 진초록 잎이 꽃과 잘 어울린다. 그래서 복수초는 아기곰처럼 귀엽다. 복수초 다음은 노루귀다. 분홍색 노루귀와 흰색 노루귀가 번갈아 가며 나타나 특유의 솜털을 자랑한다. 게다가 꽃은 얼마나 예쁘고 앙증맞은지.

풍도바람꽃은 예전에는 변산바람꽃으로 알았지만, 식물학자인 오병윤 교수가 조금 틀린 부분을 발견했다. 우선 꽃이 변산바람꽃보다 크다. 결정적으로는 밀선의 크기다. 변산바람꽃은 생존을 위한 진화의 하나로 꽃잎이 퇴화되어 2개로 갈라진 밀선(蜜腺, 꿀샘)이 있다. 풍도바람꽃은 밀선이 변산바람꽃보다 좀 더 넓은 깔때기 모양이다. 2009년 변산바람꽃의 신종으로 학계에 보고되었고, 2011년 1월 국가표준식물목록위원회에서 풍도바람꽃으로 정식으로 명명됐다.

▲ 야생화를 사진에 담으려면 오체투지처럼 엎드려야 한다.

▲ 샛노란 꽃과 진초록 줄기가 어우러진 가지복수초.

철조망 지대를 나와 좀 더 오르면 널찍한 공터가 나온다. 공터 곳곳에 로프로 바람꽃과 복수초 군락지를 보호하고 있다. 그곳을 자세히 보면 간혹 꿩의바람꽃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정상처럼 보이는 언덕에 올라 계속 능선을 타면 군부대를 만난다. 북배는 군부대 뒤쪽 산비탈로 내려서야 한다. 이 길에는 풍도대극이 많다.

풍도대극이 학계에 처음 보고된 것은 1940년 일본인 후루사와가의 주장이 일본 식물지(Journal of Japanese Botany)에 실린 것이 최초다. 그는 풍도에 자생하는 종을 잎이 좁고 총포 내에 털이 밀생하는 특징을 가지는 것을 확인하여 변종으로 처리하여 학명을 붙였다. 그리고 이후 우리나라식물명감(박만규, 1949)에 ‘풍도대극’으로 기재되어 국명을 얻게 된다. 다른 학자들은 붉은대극과 차이점이 미비하여 다른 종으로 보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 색이 고운 분홍노루귀.

▲ 붉은대극과 비슷한 풍도 고유종인 풍도대극.

제법 가파른 길은 타고 내려오면 북배에 닿는다. 북배는 풍도의 서쪽 해안을 이루고 있는 알려지지 않은 비경으로 붉은 바위를 뜻하는 ‘붉바위’에서 유래한 이름이라 추측한다. ‘배’는 긴바위를 칭하는 것으로 북배는 길게 뻗어있는 붉은 바위라는 뜻이다. ‘북배딴목’은 밀물 때는 풍도 안의 또 다른 섬이 된다. ‘딴목’에서 ‘딴’은 ‘외딴’ 또는 ‘떨어진’의 뜻이고 ‘목’은 목처럼 가늘게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북배의 붉은 바위는 그 색감이 오묘하며 푸른 바다와 어울러져 그야말로 절경이다.

▲ 풍도 최고 절경인 북배. 붉은바위가 이국적이다.

스페인 내륙을 연상시키는 북배
북배에서부터 왼쪽 해안길을 따른다. 흉하게 파헤친 채석장은 폐허로 변하며 풍도의 아픔을 전해준다. 상쾌한 파도소리 들으며 길을 따르면 풍도등대 앞이다. 나무계단을 따라 등대로 올라서면 시원한 바다 조망이 열린다. 후망산 동쪽 정상에 위치한 풍도등대는 인천과 평택, 당진항을 드나드는 선박을 비롯해 인근 해역의 여객선과 소형 어선의 안전 항해를 위해 1985년 8월 16일에 점등했다.

다시 해안을 따르면 큰여뿔 산책로를 지나 풍도마을로 돌아온다. 길이 난 섬 절반을 둘러본 셈이다. 다시 낚싯배에 피난민처럼 실려 육지로 돌아오는 배안, 동행한 사람들은 저마다 기묘한 자세로 잠이 들었다. 피곤했지만 눈이 말똥말똥해진다. 왜 풍도에는 저리 예쁜 꽃들이 지천으로 필까? 궁금증이 피곤을 날려버렸다. 밖으로 나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상상의 날개를 펴며 빙그레 웃었다.

풍도에 꽃이 많은 이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봄의 여신이 풍도와 입맞춤했다고 할 수밖에,
그것도 깊고 달콤한 키스를.
여러 날 머물다 어느 날 생각난 듯
풍도를 떠난 봄의 여신.
그 생각이란 땅 구석구석 봄기운 불어넣는 것이겠지.
서둘러 떠나며 신고 온 꽃신 한 짝 떨어뜨렸으니,
풍도 꽃은 여기서 나왔겠다.
매년 이른 봄날,
꽃신은 부르르 몸 털어
다른 어느 곳보다 진하고 향기로운 꽃들로
울긋불긋 섬을 물들여
제 주인을 부르는 것이렷다.
허나 주인은 아니 오고, 꽃에 눈먼 사람들 찾아와
오체투지로 엎드려
풍도바람꽃, 풍도대극, 복수초, 노루귀와 눈 맞추고
봄의 여신과 설왕설래하는 것이렷다.
-풍도의 키스

▲ 풍도 걷기는 야생화와 해안길을 연결하는 것이 제맛이다.
▲ 채석장을 지나면 버려진 물건들이 여럿 나타난다.

▲ 풍도등대에서 바라본 동쪽 해안은 몽돌이 깔렸다.
▲ 야생 달래를 다듬는 풍도 아낙들.

▲ 풍도랜드 꽃게탕
풍도 야생화길 안내

안산시에서 풍도 둘레길을 조성할 예정이다. 풍도 야생화길은 후망산의 야생화 군락지와 서쪽 북배를 연결하면 된다. 선착장~풍도분교~풍도마을~은행나무~군부대~북배~풍도등대~선착장 코스는 약 5km, 2시간 30분쯤 걸린다. 꽃 사진을 찍으려면 시간을 충분하게 잡아야한다. 3~4월에 볼 수 있는 꽃은 복수초, 노루귀, 풍도바람꽃, 풍도대극이다.

교통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매일 오전 09:30 왕경호가 출발하며 풍도까지 2시간쯤 걸린다. 하루 전날에 배편 운행을 확인한다. 문의 032-885-0180. 배편이 한 번밖에 없기 때문에 섬에서 민박을 해야한다.

숙식
풍도랜드(032-831-0596), 풍도민박(032-831-7637), 풍도횟집민박(032-843-2628). 2인 기준 5만원 받는다. 식사는 1끼에 6~7천원. 풍도랜드의 꽃게탕백반이 괜찮다. 1인 7천원. 영흥도 선재도의 바람의마을(032-889-0725)은 굴밥, 주꾸미 철판요리 등을 잘한다.

▲ 풍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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