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미소 짓게 할 순간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줄 알그라
김용택의 시 ‘봄날’ 전문이다. 하동과 광양을 가르는 섬진강변에는 봄날 내내 꽃들의 운동회로 떠들썩하다. 매화, 산수유, 벚꽃, 배꽃이 차례로 꽃바톤을 건네며 강변 따라 이어달리기를 한다. 그 가슴 벅찬 광경에 인간의 말과 글은 언제나 부족할 뿐임을 깨닫는다. 그러니 섬진강 시인이라는 김용택도 저리 에둘러 표현하지 않았는가.
슬며시 다가와 가슴을 꽉 움켜쥐는 봄바람이 섬진강 꽃소식을 전하면 지체 없이 배낭을 꾸려야 한다. 섬진강에 흐르는 달콤한 꽃향기만이 역마살을 타고난 백패커의 숨통을 틔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3km가 조금 넘는 거리가 너무 짧다 여겨지겠지만 막상 걷다보면 풍경이 자꾸만 발목을 잡아 속력내기가 쉽지 않다. 잠자리는 하동 송림공원이 돌봐주고, 먹거리는 섬진강이 내어주고, 꽃놀이는 광양 매화마을이 시켜주는, 백패커를 위한 100점짜리 코스다.
비록 손잡고 다녀줄 임이 없다고 해도 서운할 필요 없다. 매화 꽃가지 하나 꺾어 귓가에 곱게 꽂고 섬진강 봄물 따라 칠렐레 팔렐레 뛰어다니기만 해도 좋을 테니. 혹여 누가 손가락질 한다면 봄바람 핑계를 대면 그만이다.
먼 훗날 눈 감게 되는 날, 입가에 흐뭇한 미소 짓게 할 순간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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