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손자병법 | 속전속결
캠핑 손자병법 | 속전속결
  • 글 서승범 여행작가 | 일러스트 김해진
  • 승인 2013.03.3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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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하더라도 ‘속’하게 시작하자

‘졸속’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졸속으로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좋아할 이는 없다. 그런데 캠핑을 졸속으로 해야 한다고? 낯설고 위험할 수도 있는 자연에서 하는 야영을 졸속으로 하라니. 뚱딴지같겠지만 맞는 말이다. 손자의 조언에 기대어 감히, ‘졸속 캠핑’을 권한다.


공을 들이지 않은 일은 반드시 탈이 난다. 다시 해야 할 경우도 있고, 안 하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졸속행정, 졸속협상, 졸속통과, 졸속추진, 졸속통합. 그리 낯설지 않은 단어들이지만 뭐 하나 기분 좋은 것이 없다. 세상 모든 일은 자고로 공을 들여야만 한다.

캠핑은 사람이 사는 데 꼭 필요한 의식주를 야외로 옮기는 일이니 그 어떤 일보다 신중을 기하고 차분하게 챙겨야 한다. 휴대용 가스레인지라고 챙겼는데 전동드릴이 나올 수도 있고, 고기와 마늘과 양파와 버섯 등 이런 건 죄다 챙기고 쌀을 빠뜨리기도 하는 것이 사람이니 말이다. 심지 없는 랜턴은 초보다 못하고, 연료 없는 난로는 고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캠핑을 졸속으로 하라니.

전쟁은 질질 끌면 패망한다
손자는 전쟁을 할 때 장기전을 피하라고 말한다. 용병, 즉 군사를 잘 부리는 자(왕)는 군역을 두 번 일으키지 않고 식량을 세 번 실어 나르지 않는다고 하였다. 전쟁이 길어지면 전사자가 늘고, 자연 본국에서 병사들을 다시 징집해 전장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식량 소모 또한 엄청나다. 장기전은 그 폐해가 커서 이겨도 백성들이 입는 타격이 크다. 그러니 “용병을 오래 끌어 나라에 이로운 사례는 아직 없었다”고 손자는 말한다.

무엇보다 전쟁을 질질 끌면 승리할 확률이 적어진다. 손자의 표현의 빌면 ‘오랜 기간 군대를 햇빛에 노출시키면 국가의 비용이 부족해진다. 무기가 무뎌지고 사기가 꺾이고 힘만 소진하고 재물을 소진시키면 제후들이 그 폐해를 틈타 일어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졸속이 등장한다. 손자는 말한다. “용병법에서 ‘어설프지만 속전속결해야 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어도 교묘하게 질질 끈다는 말은 보지 못했다.” 전쟁에 대한 준비가 다소 미흡하더라도 적당한 기회가 생기면 곧장 전쟁을 개시하는 것, 이것이 졸속이다. 김원중 선생은 이에 대해 “춘추시대의 예법이나 관습으로 정해져 있는 번잡한 과정을, 긴급한 사태에서는 생략해도 좋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요컨대, ‘졸’하더라도 ‘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캠핑은 시작이 반이다
손자 선생의 말에 따라 캠핑에 대한 준비가 다소 미흡해도, 적당한 기회만 있으면 곧장 아웃도어로 나가 캠핑을 하는 것은 현명할까?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는 말자. 캠핑은 전쟁이 아니다. 전쟁을 위한 병법에서 취할 부분은 취하되, 버릴 부분은 버리고, 응용할 부분은 지혜롭게 응용하자.

전쟁의 목적은 승리다. 손자는 “전쟁은 승리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지, 오래 끄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캠핑의 목적은 무엇일까? 전쟁에서 승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전쟁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간혹 혼동하는 것처럼 캠핑에서 헛갈리기 쉬운 것은 무엇일까?

캠핑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얼마 전의 나처럼 야외술자리인 이도 있겠고, 음주문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가족의 단합을 꾀하는 이가 있는 반면, 혼자만의 시간을 탐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경우건, 중요한 건 자연과의 교감이다. 인도어(indoor)나 근교 공원에서 할 수도 있는 일을 굳이 짐 싣고 교외를 찾아서 하는 이유는 자연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적을 꺾기 위함이지만, 캠핑은 자연과 친해지기 위해 한다.

자연과 친해지는 데 많은 준비가 필요하진 않다. 안락하게 잘 수 있는 잠자리와 몸을 보호할 옷, 허기를 메우고 기분을 좋게 할 음식 정도면 된다. 충분하다는 게 아니다. 최소한의 준비라는 이야기다. 더치오븐에 밥을 못해서 캠핑을 잡쳤다거나, 우리나라 캠핑장에 그리즐리가 나타나 사람을 헤쳤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이웃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캠핑 이야기가 나오면, 캠핑을 하지 않는 이웃의 이야기는 한결 같다.

“해보고 싶어서 알아봤더니, 장비들이 엄청 비싸더라고요. 엄두가 안 나서 관뒀어요.”

갖가지 걱정일랑 잠시 미뤄두고 일단 나가자. 꼭 거실형 텐트와 에어 매트리스와 내한온도가 영하 30도에 육박하는 침낭과 간접구이를 할 수 있는 법랑그릴과 만능 요리 장비인 더치오븐과 주방용품을 정리할 수 있는 키친테이블과 분위기를 낼 휘발유등과 등등의 따위가 있어야만 캠핑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차피 오토캠핑이라면 저렴한 텐트와 버너, 코펠, 집에서 덮던 이부자리만 있어도 된다. 적어도 캠핑의 목적이 자연과의 교감이라면 말이다. 볕 좋은 봄날, 작은 1인용 텐트와 도시락, 꽃담요 한 장 챙겨와 양지바른 곳에서 책을 읽던 노캠핑객의 여유를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강박관념도 버리고 콤플렉스도 버리자. 고속도로에는 포르쉐도 있지만 마티즈도 있다. ‘졸’하더라도 일단 ‘속’하게 캠핑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야영의 원조나 다름없는 서부개척시대에는 말 한 마리에 필요한 모든 걸 다 챙겼다. 널따란 승용차 트렁크로 모자라 차를 바꾸고 수레를 덧붙이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캠핑의 여러 종류 중 하나일 뿐이다.

“전쟁의 본질을 아는 장수만이 백성들의 목숨과 국가의 안위를 책임진다”고 했던 손자의 말을 기억하자. 게다가, 문밖은 이미 봄이 오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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