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산길|통영 미륵산
걷고 싶은 산길|통영 미륵산
  • 글 사진 진우석 출판팀장
  • 승인 2013.03.31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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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멍물처럼 잔잔한 한려수도 전망대

▲ 신선대 전망대에서 본 통영항 일대. 미륵산이 험한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기에 통영항은 호수처럼 잔잔하다.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은 백석의 시구처럼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에 가고 싶은’ 곳이다. 시장 골목 사이로, 좌판을 벌인 상인들 뒤로 바다가 정겨운 이웃처럼 앉아 있다. 통영에서 흔한 것이 바다 풍경이지만, 한려해상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 미륵산이다. 미륵산은 통영의 명성을 드높이고, 이 고장 출신 예술가들에게 눈부신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통영 남쪽으로 거대한 섬이 버티고 있는데, 그것이 미륵도다. 육지와 섬이 워낙 가까워 섬 같지도 않지만, 다리를 건너야 들어설 수 있다. 이 미륵도야 말로 하늘이 통영에 주신 선물이다. 거센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에 통영항은 사시사철 호수처럼 잔잔하다. 461m 높이의 미륵산 정상 일대는 사방으로 시야가 넓게 터져 한려해상의 최고 전망대란 찬사가 아깝지 않다.

미륵산은 케이블카가 완공되어 십여 분이면 정상까지 갈 수 있지만, 호젓하게 걸어가는 것이 제맛이다. 산길은 용화사를 들머리로 다소 급경사인 띠밭등을 거쳐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올 때는 완만한 관음사 코스가 좋다. 거리는 약 4km, 넉넉하게 3시간쯤 잡으면 된다. 산행 들머리는 용화사 광장이다. 널찍한 광장 뒤로 미륵산 정상이 올려다보인다. 정상의 산불감시초소가 성냥갑만 하게 보인다. 미륵산과 눈을 맞췄으면 광장을 중심으로 왼쪽 용화사 방향을 따른다. 오른쪽은 관음사 방향으로 하산할 때 내려오는 길이다. 급경사 시멘트 도로를 오르면 널찍한 저수지를 지난다. 계곡물을 모은 곳으로 예전에는 통영시에 식수를 공급했다고 한다.

용화사에서 약수 한바가지 들이키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용화사 일대는 임도와 절 중창으로 다소 번잡하다.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한 구비 돌면 화장실과 공원이 보이고, 그 뒤 오른쪽으로 산길이 이어진다. 이정표가 없기에 길 찾기에 주의해야 한다. 길섶의 동백꽃 향기를 쫓아 15분쯤 오르면 편백나무 사이를 지나 띠밭등에 닿는다.

미륵산 산길은 띠밭등에서 정상까지 500m가 고비다. 이곳만 지나면 힘든 곳이 없다. 20분쯤 천천히 돌계단을 오르면 나무 데크가 길게 놓인 정상 능선에 올라붙는다. 여기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이 당포해전 전망대. 훤히 내려다보이는 미륵도 삼덕리가 옛 당포다. 이순신 장군이 거느리는 조선 수군이 겁도 없이 당포에 정박해 분탕질하던 왜선 21척을 단숨에 박살냈다고 한다. 전망대 옆에는 박경리 선생 묘소 전망 쉼터가 있다. 현대문학 100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소설로 손꼽히는 대작 <토지>의 저자인 박경리 선생의 기념관과 묘소가 아스라이 보인다. 

▲ 신선대 전망대에 놓인 정지용 시비에는 “통영포구와 한산도 일폭의 천연미는 다시 있을 수 없을 것” 이란 구절이 있다.

통영은 유독 걸출한 예술가를 많이 배출했다. 시인 유치환·김상옥·김춘수, 극작가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화가 김형로·전혁림 등 내노라하는 작가들의 고향이 통영이다. 아마도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경치가 그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글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장의 예술가 역시 통영을 방문해 그 아름다움에 홀딱 반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시인 백석과 정지용이다.

당포해전 전망대에서 왼쪽 케이블카 정류장 쪽으로 100m쯤 가면 신선대 전망대가 나온다. 여기에 정지용 시비가 놓여 있다. 이곳은 북쪽 통영항, 동쪽 한산도와 거제도 일대, 남쪽 소매물도 등 한려해상의 아름다움이 멋지게 드러나는 명당이다. 이곳을 선선히 정지용에게 내준 통영 사람들의 예술적 안목과 인심도 넉넉하다. “통영과 한산도 일대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우리가 미륵도 미륵산 상봉에 올라 한려수도 일대를 부감할 때 특별히 통영포구와 한산도 일폭의 천연미는 다시 있을 수 없을 것이라 단언할 뿐이다…” <정지용 산문 ‘통영5’ 중에서>

정지용의 고백처럼 통영항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은 특별하다. 특히 한산도 주변으로 둥글둥글한 섬들과 그 뒤 웅장하게 일어난 거제도의 산세는 한려해상을 대표하는 풍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지용은 담담하고 겸손하게 글을 썼지만, 내심 통영을 고향으로 둔 문인들이 무척  부러웠을 것이다.

신선대에서 암봉이 우뚝한 봉수대를 지나면 곧 정상에 올라선다. 이곳에서는 조망 안내판을 참고해 보석처럼 뿌려진 섬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으로 유명한 한산도가 손에 잡힐 듯하고, 그 뒤로 웅장한 산세를 이루는 것이 거제도의 노자산~가라산 능선이다. 그 오른쪽으로 추봉도, 매물도와 소매물도, 비진도, 소지도 등이 차례대로 펼쳐진다.

교통
자가용은 대전통영고속도로 북통영 나들목으로 나와 시내로 들어간다. 서울고속터미널과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통영 가는 버스가 수시로 있다. 통영터미널 앞 버스정류장에서 용화사 가는 버스는 05:10~23:00까지 수시로 다닌다.


숙식
통영은 미식가와 술꾼에게 축복의 도시다. 통영에는 술을 시키면 안주가 따라 나오는 다찌집 중 통영사랑 다찌집(055-644-7548)이 유명하다. 중앙시장 활어 골목에는 사철 싱싱한 활어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서호시장의 다복식당(055-645-8202)과 수정식당(055-644-0396)은 해장으로 좋은 졸복국을 잘한다. 장어머리와 시래기를 넣고 끓인 시락국 역시 통영 술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배 터지게 섬 구경을 했으면 하산이다. 정상에 산길은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서쪽으로 계속 능선을 타야 한다. 그동안 시야가 가렸던 서쪽 바다를 바라보며 완만한 능선을 내려오면 여우치(미륵치)다. 여우치에서 길은 여러 갈래라 헷갈리는데, 관음사를 거쳐 내려오려면 용화사 방향을 따라야 한다. 길은 산비탈을 부드럽게 타고 돌면서 도솔암과 관음사를 술술 내놓는다.

여우치에서 만나 동행한 아저씨는 놀랍게도 퇴근하는 길이었다. 그는 미륵산 건너편 산양중학교의 교장선생님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시내 미륵산을 넘어 출퇴근 한다고. “미륵산은 일출도 좋지만, 통영 야경이 참 멋있어요. 언제 다시 오셔 꼭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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