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SILKROAD | 이란 야즈드
BEYOND SILKROAD | 이란 야즈드
  • 글 사진 박하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 승인 2013.03.30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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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시간에 머물고 있는 불꽃

▲ 야즈드 근교의 유서 깊은 카르낙크 풍경.

소금사막과 모래사막 사이에 위치한 이란 중부의 도시 야즈드(Yazd)는 여름에 기온이 보통 40도 이상 올라가는 뜨거운 지역이다. 그 옛날 에스파한, 시라즈, 케르만 등에서 오는 대상들의 집결지였다. 제일 먼저 시내 중앙에 있어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아미르 챠크막 타워에 올라가 본 야즈드는 시내 전체가 온통 흙빛이다. 또 사막에서 부는 강한 모래바람 때문인지 사막과 도시의 경계도 없어 보인다. 다만 모스크의 돔과 뾰쪽한 미나렛만이 ‘페르시안 블루’로 빛나면서 사막의 보석이 되고 있다.

그리고 오래도록 보고 있으면 다른 도시에서는 흔하지 않는 위대한 발명품인 윈드타워(wind tower)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 윈드타워는 사방으로 구멍이 뚫린 네모난 굴뚝이다. 집안에서 밖으로 연기를 내뿜는 굴뚝이 아니라 집밖을 지나는 바람을 잡아 안으로 내려 보내는 굴뚝이다. 사방에 바람받이를 만들어 놓아 그곳에 바람이 걸리면 그 바람이 집안 아래로 내려오면서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다.

▲ 워낙 더운 곳이라 건물마다 자연바람을 이용한 윈드타워가 있다.

▲ 조로아스터교 성지인 착착의 신전에서.

특히 바람이 떨어지는 바로 아래에 수조를 만들어 놓으면 더욱 차가운 공기를 공급해 주기 때문에 그야말로 무공해 천연 에어컨인 셈이다. 한줄기의 바람이라도 잡아서 더위를 이겨내려는 이곳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야즈드는 이란 조로아스터교(배화교)의 중심부로 세계에서 보기 드문 조로아스터교 신전과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현재는 이슬람의 기세에 눌려 신도수가 줄어들었지만 이곳에서 신앙을 지켜가고 있는 신도들이 상당수다. 불의 신전(Fire temple)인 아타슈카다(Atashkadah), 침묵의 탑(Tower of silence)인 다크메에(Dakhme-ye)가 그것이다.

▲ 야즈드로 가는 길목의 풍경.

▲ 중세 분위기가 물씬 넘쳐나는 흙빛의 야즈드 구시가 전경.

영원히 타는 성스러운 불꽃이라는 의미를 지닌 아타슈카다는 세계 각지에 있는 조로아스터교 신도들이 AD470년 이후 한 번도 꺼지지 않고 타고 있는 불을 보기 위해 찾아온다고 한다. 1934년 인도에 있는 페르시아계 조로아스터 교도들의 도움으로 지은 지금의 건물 입구 중앙에는 조로아스터교의 상징인 프라바하르가 새겨져 있다. 이는 긴 날개 달린 조류인간으로 선량한 생각, 말과 행동을 통해 영혼을 고양시킨다는 의미다.

이 프라바하르는 기원전 500년 무렵의 페르시아 문화를 대표하는 페르세폴리스의 곳곳에도 새겨져 있는 것으로 봐서 조로아스터교의 역사가 아주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있어온 것이기에 혹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라고도 말한다. 이렇다보니 이란 사람들은 대부분 이슬람을 믿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알게 모르게 조로아스터교의 방식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마치 한국인들의 정서 밑바닥에는 아직도 불교 또는 정령신앙이 깔려있는 것처럼.

▲ 물가의 찻집에서 물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 전통 방식으로 킬림을 짜고 있는 모습.

자신을 아는 게 곧 신을 아는 것이다!’라는 페르시아의 격언도 그렇고, 이란의 설날인 노우루즈도 조로아스터교가 국교이던 시절 제정된 명절인데, 2500년 이상이 흐른 지금까지도 지켜져 오고 있다는 데서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성전에 들어가면 1500년 이전부터 꺼지지 않고 타고 있는 신비스런 불이 화로에 담겨져 활활 타고 있는 것을 유리창 너머로 볼 수 있다. 상징적인 불이 아니라 진짜 장작더미에 불이 타고 있는 성화인 것이다. 벽에 걸려 있는 액자 속의 문구가 조로아스터교의 가르침을 말하고 있다. “늘 좋은 생각을 가지고 바른 말과 올바른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현명한 사람은 신(아후라마즈다)의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 조로아스터교 성지인 착착의 이른 새벽 원경.
조로아스터교는 과거 특이한 장례 풍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람이 죽으면 일정한 장소로 옮겨놓고 새들이 쪼아 먹도록 하는 것이다. 일명 조장(鳥葬)이다. 종교적인 것 말고도 주변 환경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도 하겠지만, 죽은 자를 하늘과 가까운 산꼭대기로 옮겨 영혼의 승천을 바라던 장례의식이다. 야즈드에서 이런 조장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 변두리에 있는 두 붉은색 산 정상에 망루처럼 세워진 다크메에, 즉 침묵의 탑이다.

그 두 침묵의 탑이 서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데 한곳은 남성을, 다른 한곳은 여성의 시신을 위한 곳이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이란 정부에서 위생상의 문제로 그런 풍습을 금지해서 지금은 텅 빈 자리만 남아 있고 독수리들도 날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흙먼지 날리는 가파른 길을 올라 조장터에 서니 아무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찌 좀 으스스한 생각이 든다. 시신이 놓이고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가진 독수리들의 아우성이 있었을 그 자리가 이제 바람소리 이외에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 침묵의 탑. 몰려드는 먹구름이 뭔가 심상치 않는 일이 금방이라도 벌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난데없이 나타난 1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현지
▲ 야즈드 ‘침묵의 탑’에서.

청년 한 명이 계속 우리를 따라다녔다. 눈치로 봐서 뭔가를 바라는 것 같지는 않고 불량 청년도 아닌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검정 옷에 무표정한 얼굴로 그림자처럼 붙어 따라다니는 그가 좀 신경이 쓰였다.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잠시 후에 비켜나겠지 했지만, 이리저리 옮기는 곳마다 따라다니고 먼 곳을 바라보면 곁에 나란히 서서 그도 우리와 똑같은 포즈로 먼 곳을 바라봤다. 뭔가 말을 걸어볼까도 했지만 그럴만한 분위기도 아니어서 그만두었다.

그의 눈빛은 무표정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애달픔을 담고 있었다. 이곳에서 육체의 탈을 벗어버린 한 영혼이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 건지, 아무튼 그 친구 때문에 이 침묵의 탑에 머무는 내내 우리의 분위기가 저절로 어색하게 되어 갔다. 같이 있으면서도 그는 그이고 우리는 우리라는 식으로 얼마쯤의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그러다 내려오면서도 서로 무표정하게 헤어졌는데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정상부까지 올라온 것을 알 수 있었다.

▲ 주택가 골목 풍경.

▲ 구시가의 거리 풍경.

아, 그런데 그 가파른 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흙먼지 날리며 쏜살같이 내려가는 것을 보고서야 “아, 그렇구나!” 했다. 그 청년은 다름 아닌 그 옛날 시신을 뜯어먹던 독수리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내외가 아직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 지켜만 보다가 가버린 것인가. 그 순간 머리를 스치며 후회스러운 것이 하나 있었다. 그 독수리의 화신일지도 모르는 청년의 얼굴 표정을 가까이서 촬영해 두었어야 하는 건데. 항상 뒷북을 치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내려오면서 다시 한 번 바라보는 광활한 사막과 상주들의 숙소로 쓰였던 황토빛 건물들의 잔해. 이 삭막한 풍경 속에 있는 침묵의 탑. 비록 독수리들은 이제 날아오지 않지만 그 무거운 분위기에 삶과 죽음, 종교에 대해서 누구라도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볼 것이다.

▲ 초대 받은 어느 민가의 저녁식사.

▲ 조장터로 사용되었던 ‘침묵의 탑’ 석양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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