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새조개와 주꾸미
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새조개와 주꾸미
  • 글 사진 박찬일 기자
  • 승인 2013.03.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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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이나 돼야 알이 꽉꽉 차것쥬”

▲ 새조개는 ‘샤브샤브’라는 요리법이 대세다. ‘살랑살랑 흔든다’는 뜻의 이 일본어는 이 조개를 먹는데 가장 좋다.

햇살도 조을고 나도 졸았다. 홍성 가는 길이었다. 봄이 왔으니 맞는 게 군자의 도리, 멀리는 아니어도 두어 시간 차를 모니 서해에 봄이 와서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늦었다는 친구의 타박에 그는 말했다.

“대신 시방 새조개는 혀갖구 왔자녀어.”

봄은 충청도다. 느리고 그림자가 길다. 조을고 있다가 만나면 따뜻한 입김을 분다. 물은 아직 차고, 갈매기들이 신이 났다. 온갖 좋은 거 다 얻어먹고 살이 올랐다. 저 가슴살, 힘찬 날갯짓의 붉은 가슴살, 저며서 기름장 찍으면 좋겠다.

두 미물 다 즐기기에 딱 좋은 때 
홍성은 제법 다부진 마을이다. 소읍인 줄 알았는데, 조양문(朝陽門)이 떡하니 당당하게 버티고 섰다. 옛길에 있었을 게 분명한 조양문 옆으로 지방도로가 옹색하다. 조양문은 홍성의 자랑이다. 행정은 모르는 일이되, 대전에 있던 충청남도 도청소재지가 이쪽과 예산으로 온다고 한다. 대전은 광역시니 충청도에 돌려주는 게 맞다. 이 유서 깊은 내포의 땅으로 돌려주는 거다.

홍성 땅은 기름졌다. 희한하게도 들판이 곧고 먼데, 마을마다 딱 뒷동산 하게끔 작은 야산이 있다. 친구가 농담을 한다. “해발 25m나 되겠네. ” 그렇다. 실제로 50m가 넘지 않을, 딱 포근한 뒷동산이다. 그런 산이 군데군데 창조주가 벗어놓은 신발처럼 무심히 놓여 있다. 그런 마을을 여럿 지나면 남당리와 어사리다. 남당리가 규모가 큰 어항이고, 어사리는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어디든 취향에 맞게 가면 된다. 물론 이 봄의 미식을 위해서다. 주말이면 장터로 변하지만, 주중이나 일찍 서두르면 한갓지고 서비스도 냉큼 좋다.

▲ 새조개는 지금 먹어야 알이 굵고 더 달다고 하는 현지인이 많다. 3월 이후에는 산란을 위해 알을 품어서 맛이 떨어진다.

지금 뭘 먹나? 당연히 새조개와 주꾸미다. 3월이 되면 새조개가 슬슬 뒤로 물리고, 주꾸미가 앞선다. 그러니까 지금 가면 두 미물(美物)을 다 즐기기에 딱 좋은 것이다. 바다가 잠깐 딴청을 피우다가 쑥 빠져서 간조다. 금세 밀물로 물이 찰랑거린다. 그러나 개펄을 보면, 우리가 이렇게 수십만 년 자연이 알아서 만든 걸 학대한 죄를 받을 것 같다. 일부러 만들 수도 없는 개펄을 매립한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쌀이 궁했겠지만, 지금 생각하니 탄식이 절로 난다.

이쁜 개펄과 먼 바다를 본다. 드문드문 우주가 싸놓은 똥 무더기처럼 무인도가 보인다. 그 사이로 작은 배가 빠르게 발동기를 돌려 접안한다. 주꾸미를 가득 실었다. 경매장이 서고, 주꾸미가 생의 마지막 먹물을 뿜는다.

“아직 알은 별로유. 3월 말이나 돼야 꽉꽉 차것쥬.”

그래도 차진 살맛은 있다. 겨우내 찬 바닷물에 떨다가 이제 산란을 위해 먹고 살을 찌우기 때문이다. 알이 꽉 차지 않으면 값이 헐해서 아줌니들의 인심도 좋다. 1kg을 청했는데, 다뿍하게 담는다. 소쿠리가 미어진다. 주꾸미는 살겠다고 최후의 몸부림이다.

▲ 주꾸미는 이 지역에선 먹을 줄 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회로 쳐야 한다.
먹을 줄 안다 소리 들으려면 회로 쳐야
주꾸미는 이 지역에선 먹을 줄 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회로 쳐야 한다. 낙지만 먹어본 요량으로는 뭔 주꾸미회냐고 하겠으나, 천만의 말씀이다. 짠짠하고 야들하다. 조직감이 똑 부러지는 낙지와는 달리, 더 들러붙는 진한 맛이다. 대신 많이는 못 먹겠다. 딱 한 마리를 잘라 입에 넣으면 좋겠다. 힘이 얼마나 좋은지 낙지 먹고 소가 일어선다면 주꾸미회에 춘정이 동하겠다.

새조개는 한창이다. 이거, 먹는 법 다 안다. 텔레비전의 영향이다. 카메라만 대면 제작이 쉽고, 시청률이 잘 나오니 온갖 방송에서 제철이라면 일찌감치 달려가서 카메라에 담는다. 새조개 타령이 1월부터 방송을 타는 까닭이다. 그러나 지금 먹어야 알이 굵고 더 달다고 하는 현지인이 많다. 3월 이후에는 산란을 위해 알을 품어서 맛이 떨어진다.

새조개는 잘 손질한 걸 네 명이서 1kg 정도 먹고, 주꾸미를 좀 곁들이는 게 좋다. 새조개는 ‘샤브샤브’라는 요리법이 대세다. ‘살랑살랑 흔든다’는 뜻의 이 일본어는 새조개를 먹는데 가장 좋다. 오래 삶으면 질겨지기 때문이다. 미리 육수를 끓이는데 아직 맛이 다 나오지 않은 바지락을 넉넉히 넣고 배추가 아주 중요하다. 단맛이 바특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 국물을 끓이면서 새조개를 잡아 살살 넣어서 데친다. 10~15초 정도 시간을 재보면 자기 입에 맞는 간이 나온다. 그리고 그대로 입에 넣는데, 달다는 게 이런 거로구나 하게 된다.

주꾸미도 조금 넣어서 다리를 재빨리 먹고, 머리는 좀 더 푹 삶아 먹는다. 머리에서 먹물이 터져서 국물이 진한 콜타르처럼 끓는다. 새조개와 주꾸미를 다 먹었으면, 이 국물에 국수나 밥을 넣어 먹는다. 먹물색의 국물에 풀린 국수가 흐드러지고, 막걸리에 취해 가게를 나오니 봄이 발을 툭, 건다. 봄이로구나. 돈 10만원에 봄을 샀다. 바다를 빌렸다. 기왕 가는 길이면 홍성읍내 장을 구경하는 게 좋다. 싱싱한 해물과 봄나물을 살 수 있다. 홍성장은 5일장으로 1·6일에 장이 선다.


박찬일 | 소설을 쓰다가 이탈리아에 가서 요리학교 ICIF, 로마 소믈리에 코스와 SlowFood 로마지부 와인과정을 공부했다. 시칠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한국에 돌아와 이탈리아 레스토랑 ‘뚜또베네’ ‘트라토리아 논나’ 등을 성공리에 론칭시켰다. 지은 책으로 <박찬일의 와인 컬렉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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