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자가 걷는다 | 설피밭
박기자가 걷는다 | 설피밭
  • 글 박소라 기자|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3.03.27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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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리~강선리 눈밭 트레킹
“새하얀 눈밭에 웃음꽃 피었어요”

▲ 월금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단목령 입구 눈밭에 누워 찍은 기념사진.

겨울의 끝은 곧 봄의 시작. 하지만 마지막이라 말에는 남다른 의미가 주어진다. 막상 이 기나긴 겨울도 끝이라니 아쉬워 곰배령(1164m)을 향한다. 곰의 배처럼 하늘을 향해 둥그런 능선이 펼쳐진 곰배령은 점봉산(1424m) 남쪽 산줄기에 해당된다. 이 일대는 예부터 첩첩산중 오지인데다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돼 출입이 금지되면서 원시림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봄부터 8월까지는 온 산천에 들꽃이 피어나 ‘천상의 화원’이라고도 불리지만 겨울이면 적설량이 1m가 넘는 설국으로 변한다. 그래서 한번쯤 곰배령의 꽃멀미에 취해본 이라면 새하얀 눈꽃에 대한 기대로 다시금 찾아가게 되는 산이다.

▲ 강선리로 들어서는 숲길 입구의 표지판.
결국 문 닫힌 ‘비밀의 화원’
곰배령 산행은 사전에 반드시 점봉산생태관리센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1일 탐방인원은 200명으로 제한되며 예약은 산림청 홈페이지를 통해 선착순으로 받는다. 며칠 동안 부산스레 입산준비를 마친 취재팀과 동행을 약속한 이들은 연극배우와 방송인으로 구성된 월금산악회(회장 문성근). 왁자지껄한 이들을 태운 버스는 어둠을 뚫고 인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곰배령 자락에 터를 이룬 진동리는 현리에서부터 좁고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한다. 더딘 속도로 진동리에 이를 즈음 별안간 버스가 멈춰 선다. 길가에 대형버스 출입금지란 푯말이 걸려 있었다. 이곳에서 점봉산생태관리센터가 있는 곳까지는 약 2km.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김운경 방송작가는 “가지 말라면 그렇게 해야지”라며 먼저 배낭을 꾸렸다. 월금산악회 회원들도 군말 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가다보니 앞서가던 어느 산악회의 버스는 진입을 시도하다 눈길에 빠진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동네 주민들 차량도 길게 꼬리를 이어 멈춰서 있었다.

생태탐방지원센터는 곰배령과 단목령으로 길이 나뉘는 삼거리에서 50m만 더 올라가면 된다. 삼거리 바로 앞에는 펜션 설피민국이 세워져 있다. 취재팀을 마중 나온 주인 이상곤씨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던 중 이곳 풍경에 반해 아예 눌러앉은 산꾼이다. 설피민국은 그가 세운 일종의 나라로, 스스로 추장이라 부른다. 대통령보다 덜 세속적이라는 이유에서다.

▲ 강선리에 들어서면 집집마다 처마에 널어놓은 명태들을 볼 수 있다.

▲ 곰배령 산행 대신 강선리 트레킹을 즐긴 월금산악회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앞서 입장한 팀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 여유 있게 올라선 일행들은 곰배령의 눈꽃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생태관리센터 앞에 이르자 청천벽력 같은 말이 돌아왔다. “탐방예약 시간이 지나 출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을 입구부터 걸어오느라 시간을 지체한 것이 실수였다. “이른 새벽부터 달려 왔는데 한번만 봐 달라”는 사정에도 직원들은 고개를 저었다. 결국 강선리까지만 다녀오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왕복 4km. 두어 시간이면 다녀올 거리였다. 진동리 입구에서 이곳까지 걸어온 것만 2km. 속으로 부아가 치밀었지만 엄연한 이곳의 규칙이니 따라야 했다.

▲ 강선리로 향하는 월금산악회 회원들.

▲ 엄나무에 대해 설명 중인 주민 이상곤씨(왼쪽).

4월까지 눈 쌓인 오지마을 강선리
산속 마을 강선리로 들어서는 길은 제설작업이 한창이었다. 길을 조금만 벗어나면 허벅지까지 눈에 빠졌다. 왼쪽으로 이어진 계곡도 눈에 파묻혀 제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주민 이상곤씨는 “벌써 눈이 녹았네”라며 새삼 놀란 표정이다. 그는 “올해 전국적으로 날씨가 춥고 눈이 많이 왔지만 여기는 원래 그런 동네”라며 “4월까지도 눈이 쌓여 있고 응달진 곳은 5월에도 녹지 않는다”고 말했다.

“계곡의 하트 보이죠? 저 물을 길어다 마시면 사랑이 이루어진대요.”
이상곤씨가 걸음을 멈추고 계곡 쪽을 손짓한다. 정말로 하트 모양으로 눈이 녹은 계곡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재치 있는 농담에 여성회원들은 너도나도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기 바쁘다.
30여분 걸어 도착한 강선리는 조용한 산골마을이다. 여기서 곰배령으로 올라가려면 등산로 입구의 산림청 직원에게 출입증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강선리까지 다녀오기로 약속한 월금산악회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다시 진동리로 돌아서야 했다.

▲ 산속 마을 강선리로 들어서는 길은 조금만 벗어나면 허벅지까지 눈에 빠진다.
▲ 하트 모양으로 눈이 녹은 계곡을 촬영 중인 월금산악회 회원.

진동리 설피민국이 자리한 곳은 설피밭이라 불린다. 겨울이면 눈이 많이 쌓여 발이 빠지지 않도록 신는 설피가 없으면 오갈 수 없던 탓이다. 설피밭에도 너른 눈밭이 펼쳐져 있었다. 눈밭을 향해 뛰어든 회원들에게 점심을 먹으라며 앞마당을 내준 이상곤씨는 직접 담근 마가목주며 천삼주 등 귀한 술과 산야초로 만든 효소액을 줄줄이 꺼내왔다. 한바탕 배부른 식사를 마치자 그는 단목령까지 가보자며 안내를 자처했다. 물론 단목령 역시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그 입구까지 눈이 가득 쌓여있어 올라갈 수 없으니 눈이라도 실컷 구경하자는 뜻이다.

몇몇 집을 지나 단목령 입구에 이르니 예상대로 사람의 발길이 끊긴 이곳은 눈밭이 거대한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홍창욱 SBS 드라마본부 PD가 호기롭게 선두에 서서 러셀에 나섰다. 하지만 100m쯤 지났을까. 뒤따르던 회원들의 얼굴에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어차피 더 이상 앞으로 진전할 수 없으니 눈밭을 뒹굴며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눈밭에 몸을 눕히자 일어서기가 싫을 정도로 푹신함이 밀려온다. 여기저기 피어난 웃음꽃이 곰배령 산자락을 물들인다.

▲ 단목령 입구에서 눈길을 걸으며 즐거워하는 월금산악회 회원들.

▲ 강선리 트레킹에 나선 월금산악회 회원들.

곰배령 탐방 안내
강선마을~곰배령은 산림청이 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관리하고 있어 사전에 인제국유림관리사무소에 탐방신청을 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다. 예약은 산림청 홈페이지(www.forest.go.kr)에서 받으며 1일 200명까지 신청 가능하다. 신청자 외 동행자 2명까지 예약할 수 있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휴무. 3월부터 4월 15일까지는 산불조심기간으로 입산이 금지된다.
문의 033-463-8166

▲ 설피민국
숙식
진동리에는 펜션과 민박이 여럿 있다. 점봉산생태관리센터 바로 앞에 위치한 설피민국은 산꾼 이상곤씨가 운영하는 이층펜션으로 숙박요금은 6평 6만원, 12평 12만원이다. 200가지가 넘는 산야초를 발효시켜 만든 효소액은 1.8ℓ당 6만원에 판매한다. 문의 033-463-4289.
진동리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현리로 나오면 맛집으로 꼽히는 고향집(033-461-7391)을 지나게 된다. 직접 만든 두부를 사용하는 이곳은 두부전골과 두부구이가 인기 메뉴다. 가격 각 7000원. 옥수수 막걸리도 별미다.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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