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40
▲ 사람 키보다 높은 곳에 달린 노루궁뎅이버섯. 저렇게 두 사람이 합심해야 겨우 채취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
가리왕산 아래에서 민박집을 하는 저는 올 여름 휴가철 내내 정말이지 “사람에 치인다”는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로 바쁘게 손님을 치러냈습니다. 많은 손님들을 맞으며 숲의 여름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달려가서 보고팠지만, 그건 마음일 뿐 가까운 휴양림 숲을 산책할 시간조차 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간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손님들을 치러내고 나니 이번에는 태풍과 비가 시작되더군요. 시간은 나지만 날씨 때문에 또 숲으로 가는 마음을 잡아매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며칠을 기다리고 난 뒤 태풍이 지나가고 비도 바람도 잦아든 9월 초, 여름내 가고 싶던 가리왕산 숲속으로 드디어 동네분들과 즐거운 산행을 나섰습니다.
▲ 채취한 노루궁뎅이버섯을 넣고 끓이는 라면. 산행중에 먹는 라면의 맛도 맛이지만 노루궁뎅이버섯이 들어 있는 라면의 향이란…, 상상에 맡기렵니다. |
그렇게 꽃을 보러 산에 든 일행들은 노루궁뎅이버섯을 발견하고는, 식물을 공부하러온 본래의 목적은 잊기로 합니다. 대신 다들 숲 이곳저곳을 분산하게 움직이며 노루궁뎅이버섯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지요.
상황버섯이라고 여겨지는 버섯도 두 덩어리 채취하고, 노루궁뎅이 버섯도 발견합니다. 하지만 눈에 띄는 모든 버섯들을 다 채취할 수는 없었답니다. 아주 높은 곳이나 채취하기 어려운 곳에 붙어 있는 것들도 있고 또 비를 너무 맞아 상하기 시작한 버섯들도 있었기 때문이죠. 일행의 안타까운 탄식이 쏟아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설픈 채취꾼인 우리들 사정, 그렇게 자연이 농사지은 귀한 버섯을 손쉽게 채취해 버리면 그 가치가 없는 법이지요.
노루의 엉덩이 모양으로 하얗고 탐스럽게 참나무과 나무들에 달려서 기생하는 노루궁뎅이버섯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재작년. 유난히 몸이 아프던 그해 겨울, 동네총각 장순원 씨가 산에서 조금씩 채취해 말려둔 것을 몸이 아파 고생하는 제게 끓여 먹어 보라고 주었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귀한 것 인줄 모르고 그저 향이 좋으니 하루에 한 덩이씩 푹푹 끓여서 차로 매일 서너 번씩 마시곤 했지요. 약이 되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노루궁뎅이버섯으로 차를 끓여 보름쯤 먹고 나니 그동안 앓느라 잃었던 기력이 회복되는 느낌이었습니다.
▲ 그날 채취한 노루궁뎅이버섯. 일행이 맛나게 전골로 만들어 국물까지 먹었습니다. |
이제부터 열심히 일하며 겨울잠을 준비해야 하는 산골의 가을이 시작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열심히 준비해서 추운 겨울을 보다 풍요롭게 준비를 해야 기나긴 겨울 아랫목을 즐기며 행복한 시간들로 채워 나가야겠지요.
권혜경 | 서울서 잡지사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04년 3월 홀연히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기슭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서울내기 여인. 그곳서 만난 총각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산골 이야기가 홈페이지 수정헌(www.sujunghun.com)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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