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산길|평창 오대산
걷고 싶은 산길|평창 오대산
  • 글 사진 진우석 출판팀장
  • 승인 2013.02.2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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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나무의 겨울 도량

▲ 조망이 일품인 비로봉 정상. 왼쪽 멀리 설악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오대산은 일찍이 <삼국유사>를 쓴 일연이 ‘불법(佛法)이 길이 번창할 것’이라 예언했던 불교의 성지이며 한편으로 나무의 성지이기도 하다. 오래되고 기품 있는 전나무, 자작나무, 신갈나무 등이 눈과 빚어내는 조화는 오대산의 겨울 풍경을 더욱 깊고 묵직하게 한다.

오대산 겨울산행은 상원사에서 비로봉에 올라 상왕봉까지 능선을 걷다가 옛 446번 비포장도로를 타고 내려오는 코스가 좋다. 비로봉까지 오르는 길이 좀 힘들지만, 이 고비만 넘기면 눈 쌓인 부드러운 능선을 만끽하다가 비포장도로를 타고 부담 없이 내려올 수 있다. 이 길은 약 12km, 5시간쯤 걸린다.

월정삼거리에서 월정사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가로수가 전나무다. 겨울 특유의 맑고 시퍼런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푸른 침엽수들이 보기 좋다. 이어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비포장 길이 이어지는데, 차를 타고 가기에는 정말로 아까운 길이다. 이곳이 오대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대천계곡이기 때문이다.

오대천계곡을 중심으로 오대산 다섯 봉우리가 연꽃처럼 피었기에 골골 계류들이 모두 여기서 만난다. 예전에는 차가 뜸해 걸어도 별문제가 없었다. 10년 전쯤의 10월 말, 함박눈 펑펑 내리는 이 길을 걸으며 얼마나 행복했던가.

상원사 입구에 내리면 갑자기 밀려온 서늘한 공기가 뺨을 후려친다. 높이가 무려 900m인 오대산의 깊은 품이다. 여기서 상원사로 가는 길은 하늘을 찌르는 전나무 길이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나무들이 빽빽하다. 길 초입에 관대걸이가 있는데, 세조가 이곳에 옷을 걸고 계곡에서 목욕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세조의 등을 밀어준 동자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가 문수보살이었다. 문수보살이 등을 밀어준 덕분에 세조는 피부병이 다 낳았고, 이를 고맙게 여겨 상원사에 문수동자상을 세웠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1984년 문수동자상을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조사하던 중 복장 안에서 세조가 입었던 저고리, 다라니경 등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상원사에서 문수동자상 말고도 꼭 찾아볼 것이 동종이다. 아름다운 비천상이 조각된 동종은 본래 안동의 문루에 있던 것을 세조가 문수보살에게 바치기 위해 이곳으로 옮겼다. 이 종은 에밀레종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소리가 좋기로 유명하다. 에밀레종이 장중하다면 동종은 맑고 청량하다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인지 한번 쳐보고 싶지만, ‘종을 치지 마시오’란 팻말이 있어 입맛만 다신다.

상원사에서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찻집 뒤의 적멸보궁 안내판을 따르면 한동안 산비탈을 타고 중대사자암에 이른다. 중대사자암은 암자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터에 비해 건물이 너무 크다. 머물고 싶은 맛이 사라져 서둘러 길을 나서면 하늘을 찌르는 전나무와 자작나무들의 영접을 받으며 적멸보궁에 닿는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은 오대산 최고의 성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팔작지붕의 화려한 청기와 지붕 뒤로 눈을 뒤집어쓴 오대산 연봉이 아스라하다.

▲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은 오대산 최고의 성지다.

적멸보궁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험하지만, 아름드리 전나무·물박달나무·들메나무·피나무들 사이를 휘돌아 오르는 맛이 매혹적이다. 오대산 최고봉인 비로봉은 곧 나타날 듯하다가도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다 진이 빠져 ‘언제가 나오겠지…’하며 자포자기 상태로 걷다보면 문수동자상처럼 자애로운 미소 지으며 나타난다.

교통
자가용은 영동고속도로 진부 나들목으로 나오면 오대산이 가깝다. 버스는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행 버스가 06:32∼20:05 약 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진부시외버스터미널(033-335-6963)에서 월정사와 상원사행 버스는 06:30~19:40, 약 1시간 간격으로 있다.

맛집
월정사에서 점심 공양을 받을 수 있다. 각종 나물과 약초들로 담백하게 차려진 웰빙 밥상이다.

진부 시내의 부일식당(033-335-7232)은 저렴하면서 반찬 많은 산채정식으로 유명하고, 월정사 입구의 오대산식당(033-332-6888) 역시 각종 나물로 정성스럽게 차린 산채 음식을 내온다.

 

널찍한 공터인 비로봉 정상은 조망이 시원하게 뚫린다. 동쪽으로 동대산과 노인봉 너머 주문진 앞바다가 찰랑거리고, 북쪽으로 설악산의 장쾌한 마루금이 흘러간다. 지극히 복된 이 풍경 속에서 오래 머물고 싶지만, 칼바람에 쫓겨 상왕봉으로 향한다. 이제부터는 쌓인 눈을 밟아가는 부드러운 능선길이다. 앞서 간 사람들이 능선에 길을 내준 덕분에 편하게 걸을 수 있다. 능선의 나무들은 두툼한 눈 솜이불을 끌어당겨 덮고 있다. 발걸음을 멈추면 바람에 눈 쓸리는 소리가 들리다 한동안 적막이 흐른다. 겨울산은 이 맛에 고행을 자처하는 것일까.

넓은 헬기장이 있는 1539m봉을 넘으면 길은 더욱 순해지면서 원시림 지대가 나타나는데, 마치 거목들의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특히 다섯 줄기가 어우러진 거대한 신갈나무와 속이 비고 껍질에 우락부락한 혹이 붙은 기괴한 신갈나무의 모습은 경이롭다.

이어지는 상왕봉 정상은 설악산이 좀 더 가깝게 잘 보인다. 상왕봉을 지나 다시 능선을 타면 곧 두로령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상원사 방향으로 내려서면 옛 446번 도로를 만난다. 자작나무가 가로수처럼 늘어선 비포장도로를 따라 구불구불 내려오면 상원사 입구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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