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SILKROAD | 사막에서 만난 고풍스런 보석, 이란 아비아네
BEYOND SILKROAD | 사막에서 만난 고풍스런 보석, 이란 아비아네
  • 글 사진 박하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 승인 2013.02.2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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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앞산에서 바라본 아비아네 마을 전경.

이란 아비아네(Abyaneh)는 깊숙한 사막의 오아시스로 마을 앞의 녹음이 우거진 나무 사이로 시냇물이 콸콸 흐르는 해발 2200m에 위치한 시골마을이다. 나무 그늘로 들어서자 더위가 한방에 사라진다. 사막에 이처럼 시원하고 풍부한 물이 흐르는 마을이 있을 줄이야. 개울을 따라 군데군데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왁자지껄 떠들며 즐거운 모습이다. 이 시골에 웬 사람들이 이리 많지 했는데, 주말 휴일(금요일)을 맞아 가족 단위로 테헤란에서 온 사람들이란다.

산기슭에 모여 있는 집들은 모두 붉은빛의 흙집이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토속적이다. 최근 보존을 위해 단장을 좀 했다지만 토담들이 여기저기 무너진 곳이 있었다. 나무뼈대가 불쑥 튀어나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발코니, 곳간 문같이 옹색하게 생긴 대문들은 세월의 때가 잔뜩 묻어 있어 오래된 마을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게 한다.

14세기 몽골군의 침입을 피해 이곳으로 숨어든 사람들이 이룬 마을이라는 말이 있지만, 3~7세기까지 고대 페르시아를 다스린 사산 왕조시대의 흔적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해서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는 마을이다. 건축양식, 조로아스터식 복장이나 독특한 사투리 등에서 사산시대의 맥이 느껴진다고 한다.

▲ 마을 축제에 모인 사람들.

▲ 토담집 앞에서 만난 부녀.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나귀에 짐을 실은 노부부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여기 아비아네 여인들의 옷차림은 아주 화려하다. 흰 바탕에 크고 화려한 꽃무늬의 루싸리를 머리에 두르고 주름이 많이 잡힌 검정색 짧은 치마에 검은 스타킹을 신었다. 보통 검은 차도르를 하는 이란 여성들과는 대조가 되었다.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들의 차림도 마찬가지였다. 등을 구부정하니 걸어가는 모습이 꼭 타조를 연상시킨다.

어여쁜 아가씨 파티마를 만난 곳은 이곳에서였다. 골목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대문 앞에 서있던 몇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초청하여 집안에 들어갔다. 집안은 밖과는 확연하게 달리 시원해서 놀랐고 또 생각보다 호화로웠다. 집안 거실로 안내되어 둘러보니 거실 바닥에는 붉은색 카펫이 빈 곳 없이 깔려 있고, 거실 중앙에는 정사각형 분수가 물을 뿜고 있었다.

▲ 당나귀를 몰고 일터에서 돌아오는 모습.

▲ 밭에서 풀을 뜯어 당나귀를 타고 오는 노인.

벽에는 아치형으로 들어간 공간에 도자기며 오래됨직한 조각상들을 진열해 놓은 게 멋스러웠다. 파티마는 테헤란에 사는 여대생인데 엄마와 함께 주말을 이용해 엄마 친구인 이 집에 놀러왔다는 것이다. 집주인 아줌마는 나이든 이란 아줌마치고는 영어를 하는데, 알고 보니 딸이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 딸의 초청으로 캐나다를 다녀왔으며 나이아가라 폭포도 구경했다고 자랑했다.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이방인인 우리를 선뜻 집안으로 초청했나 싶었다.

▲ 꽃무늬 차림의 전통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 마을 축제에서 먹을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아비아네의 전통의상을 입어볼 기회가 주어졌다. 아비아네 토속 옷을 입어보라면서 주인아줌마가 한쪽 방으로 데리고 갔다. 동행했던 집사람에게는 캐나다에 사는 딸의 옷을 주는데 주름치마가 아주 묵직했다. 한 겹이 아니라 서너 겹으로 된 치마는 치마가 아니라 안이 두 개로 나누어진 치마 같은 바지였다. 남자들도 폭이 넓은 주름바지를 입는데, 처녀 총각은 주름이 많고 기혼 남녀는 주름이 적다고 한다.

갈아입으면서 멋쩍어하는 나에게 파티마는 잘 어울린다며 어색함을 달래준다. 그때까지 우리를 보고만 있는 주인아저씨에게 아줌마가 “손님이 오셨는데 뭐를 가져오지 그러고 있냐”고 했다. 아저씨는 부엌으로 가서 따끈한 홍차를 예쁜 쟁반에 담아 왔다. 여기나 저기나 아줌마들이 남편 다루는 것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한테 물었다. “이곳에 10여 년 전에 왔었는데 그때는 마을사람도 많고 볼거리도 많았지만 지금은 관광객들밖에 안 보인다”고. 그러자 오지인 이곳 시골마을에도 새 물결이 일어 젊은이들은 거의 직장을 얻기 위해 객지로 나가고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인구가 줄어들고 아이들도 없어져 학교도 사라지고 마을에 활기가 없다는 것이다.

‘비경은 시가 될 수 없고 사람만이 시가 된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멋스러운 마을이 개방의 물결로 차츰 쇄락해가는 모습을 보자니 안타까웠다.

▲ 남녀의 구별 장식이 달린 집 대문.

▲ 예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골목길의 토담 아치.

 


 

▲ 어느 가정집 대문 앞에서.

▲ 오랜 세월을 견뎌오고 있는 토담집들.

▲ 오아시스처럼 빛나는 아비아네의 산기슭.

▲ 토기를 이용한 마을 광장의 공동 수돗가.

▲ 숙소의 로비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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