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자가 쏜다ㅣ국궁
임기자가 쏜다ㅣ국궁
  • 글 임규형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3.02.1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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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맑은 마음으로 시위를 당겨라
서울 우장산 공항정 체험…3개월이면 기본 과정 익혀

▲ 활을 쏘는 사대는 왼쪽이 상석, 오른쪽이 말석이다. 활을 쏘기 위해선 가슴이 최대한 열리는 만작 자세를 만들어야 한다.

▲ 과녁을 향해 활을 당길 땐 마음을 비우고 맑은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
2011년 개봉 당시 구름 관중을 끌어 모았던 영화 <최종병기 활>이 상영된 후 국궁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활터를 찾는 이들이 늘자 대한궁도협회 등 단체들도 국궁을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저변 확대에 힘쓰고 있다. 가까운 대한궁도협회소속 활터를 방문하면 무료로 국궁 체험이 가능하다.

활은 마음의 무예
국궁을 배우려고 처음 활터를 찾는 이라면 누구라도 멋지게 과녁을 명중시키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큼직한 사각형 과녁에 화살이 맞기만 해도 명중으로 인정되는 국궁의 규칙을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착각하기 쉽다.

국궁은 활을 쏘는 사대(射臺)에서 과녁까지 거리가 145m나 된다. 서울시 우장산 공원에 위치한 공항정 사대에 올라서니 건장한 남자만큼 커다란 과녁이 손톱처럼 작게 보였다. 화살촉으로 목표를 겨눠보지만 두 눈과 과녁 사이엔 거리를 잴 조준경도 가늠좌도 없다. 오직 고요한 마음을 통해 자신과 목표 사이의 거리를 지워낸다.

비거리가 먼만큼 활의 각도를 높여 곡사(曲射)를 쏘아야 화살이 과녁까지 날아가는데, 이는 순전히 훈련을 통해 감각으로 익혀야 하는 기술이다. 생전 처음 국궁을 들어본 기자는 시위를 당긴 손이 덜덜 떨릴 때까지 어느 곳을 겨눠야할지 몰라 화살 끝만 어지럽게 흔들어댔다. 결국 화살은 비틀거리며 날아가더니 과녁 근처에도 못가보고 떨어졌다.

▲ 화살의 뒤쪽엔 세로로 홈이 파인 ‘오늬’가 있다. 비정비팔 이후 현에 오늬를 물리는 동작을 ‘오늬 먹이기’라고 한다.
▲ 현을 당기기 위한 보조장구 각지.

기자의 활 교육을 담당한 주비 사두(師頭)는 “입문자는 대부분 활의 기본을 익히기까지 3개월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두는 활터 사범들의 대표를 가리키는 말이다. 기술이 부족하니 명중을 바라진 않았다. 그러나 텅 빈 겨울 하늘에 화살 한 대 쏴 보지 못할 만큼 마음이 위축돼 있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사대에 오르기 전 “국궁은 마음의 무예”라고 언급한 주 사두의 설명에 수긍이 갔다.

초보 궁사들은 국궁의 기본을 익히는 3개월 동안 연습용 활을 사용하며 사범의 지도를 받는다. 공항정에선 기초교육 기간 동안 무료로 국궁 예법(禮法)과 바른 활쏘기 자세를 배울 수 있다.

▲ 공항정에 보관중인 개인 활과 화살들. 명궁 칭호를 받는 국궁 5단보다 하수는 모두 카본 섬유를 이용한 개량궁과 화살을 사용한다.
▲ 공항정 한쪽에는 초보자용 활 연습장이 있다. 자세를 충분히 익힌 궁술 입문자는 줄이 묶인 화살로 마음껏 연습할 수 있다.

“예법이라 해서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궁도에 임할 때 지켜야 할 9가지 규칙을 평소 실천하라고 알려드립니다. 궁도구계훈(弓道九戒訓)이라 부르는데 정확히 언제 누가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음 수련에 큰 도움이 되는 말들이라 따르고 있습니다.”

예법에 대해 설명하던 주 사두가 건넨 책자엔 덕행과 용기, 겸손, 청렴으로 활과 인생을 대하라는 사자성어 아홉 구절이 적혀 있었다. 승자와 패자의 정신에 대한 여덟 번째 규율 밑에 ‘타인의 활을 당기지 않는다’는 마지막 규칙이 이어졌다.

▲ 주비 사두가 각궁의 틀을 잡는 도지개를 사용해 활을 길들이고 있다. 탄성이 강한 각궁은 시간을 들여 틀을 잡지 않으면 현을 얹을 수조차 없다.

▲ 각궁의 틀을 잡아주는 보조기구 ‘궁창’.

마음을 단련하는 ‘궁도구계훈’
국궁에 사용되는 활은 보급을 목적으로 양산된 개량궁과 전통방식으로 제작된 각궁이 있다. 성질이 예민해 다루기 쉽지 않은 각궁은 물론 기계로 만든 개량궁이라도 소지한 궁사의 힘과 활 쏘는 습관에 따라 조금씩 길들여진다. 주 사두는 “전혀 다른 습관을 지닌 사람이 타인의 오래 길든 활을 잘못 당기면 아무리 좋은 각궁이라도 부러질 수가 있어 그러한 규율이 있다”고 말했다.

▲ 활대를 쥔 ‘줌손’은 힘이 분산되지 않도록 손목을 곧게 편다. 현을 당기는 손은 엄지와 검지, 중지를 사용한 파지법에 따라 ‘각지손’을 만든다.

주 사두는 “개인 장비는 3개월간 여러 크기의 연습용 활을 사용해보며 자신의 힘과 팔 길이에 맞는 활을 찾은 뒤 구입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국궁용 개량궁은 크기에 비례해 시위의 장력이 늘어난다. 크고 강한 힘을 가진 활은 무겁고 긴 화살을 쓸 수 있어서 바람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고 사격이 가능하지만 그만큼 숙련된 궁사만 다룰 수 있다. 국궁 입문자는 활 쏘는 자세를 정확하게 익혀야 하기 때문에 가벼운 활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궁의 장력을 세는 단위는 흔히 파운드(lb)를 사용한다. 1파운드는 약 0.45kg이다. 30~35파운드 장력을 지닌 활로 시작해서 자세를 숙련하면 2~3파운드씩 단계를 올리며 궁술을 익힌다. 궁술과 체력이 길러지면 숙련자는 40~50파운드, 전국체전에 참가할 만큼 수준급인 궁사는 장력이 60파운드 언저리인 각궁까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국궁은 연습과 경기 모두 여러 궁사가 함께 사대에 자리를 잡은 뒤 순서를 정해 돌아가며 활을 쏜다. 장유유서의 정신에 입각해 연장자나 국궁 단수가 높은 궁사는 상석인 왼쪽에 자리를 잡고 먼저 시위를 당긴다. 이제 갓 활을 잡은 기자는 가장 말석인 오른쪽 끝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자신의 차례가 오면 선배 궁사들을 향해 “활 배우겠습니다”라며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네고 과녁을 향해 사격준비를 한다. 두 발을 어깨 넓이로 벌리고 서서 화살을 현에 건다. 활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뒤 활대는 밀고 시위는 당기며 활을 눈높이까지 내린다. 활이 멈춘 순간 가슴이 최대한 열린 ‘만작’자세가 완성되어야 한다.

과녁을 바라본다. 시위를 당긴 손아귀를 풀자 “쇄액!”하는 장쾌한 소리와 함께 화살이 날아갔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겨울 하늘을 나는 화살에 살며시 미소가 그려진다.

▲ 한국이 전통 활인 각궁. 물소 뼈·소 힘줄·대나무·참나무·뽕나무·자작나무 껍질을 민어 부레풀로 접착한 복합궁이다. 작은 크기지만 힘이 강해 숙련자만 다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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