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손자병법ㅣ도천지장법
캠핑 손자병법ㅣ도천지장법
  • 글 서승범 여행작가|일러스트 김해진
  • 승인 2013.02.12 0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캠핑은 가정의 중대한 일이다

전쟁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캠핑도 그러하다. 캠핑의 전략을 구하다가 손자가 지은 병서 <손자병법>을 떠올렸다. 2600년 전 전쟁에 이기기 위해 쓴 책에 나온 말들은 종종 오늘날의 캠핑과 관련해서도 새겨들을 말이 많다. ‘캠핑 손자병법’은 <손자병법>에서 얻은 캠핑의 지혜에 대한 이야기다. <손자병법> 텍스트는 김원중 선생이 옮긴 2011년 글항아리 출판사 본을 참고했다.

‘전쟁이란 나라의 중대한 일이다.’ <손자병법>을 여는 말이다. 캠핑은 가정의 중대한 일이다. 한 가정의 문화와 경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일에 계책과 전략이 없을 수 없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손자가 꼽은 전략에서 힌트를 얻을 수는 없을까? 있다. ‘도천지장법’이 그것이다.

처음 캠핑을 떠났을 때 전략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2002년 강원도 화천으로 떠났던 건, 사실상 ‘밤샘 야외 술자리’였다. 어떤 전략도 계책도 필요 없었다. 그저 주종(酒種)과 안주만 정하면 됐다. 사귀고 있던 여자에게는 친구들과 즐길 1박의 시간에 대한 양해만 구하면 그만이었다.

전쟁은 국가 중대사니 살펴야 한다
횟수를 거듭하면서 ‘야외 술자리’는 캠핑으로 진화했고, 여자 친구는 아내가 되었다. 캠핑에는 약간의 전략이 필요해졌다. 연인이었을 때 나는 여자의 자기장 안에 있었다. 분명 존재하지만, 압박의 강도는 그리 세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 후의 삶은 ‘2인 3각’ 게임과 같아서 묶인 건 발목 하나뿐인데도, 몸 전체가 묶인 듯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캠핑은 해야겠으니, 이제 캠핑은 전쟁이 되었다.

손자가 ‘전쟁이란 나라의 중대한 일’이라고 말한 이유는, 전쟁이 삶과 죽음, 존립과 패망을 가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을 하기 전에 반드시 잘 살펴야 한다 했다. 캠핑이 가정의 존립과 패망을 가른다고 하면, 과장이다. 하지만 마트 시식과 TV 시청으로 일관하는 주말과 캠핑하는 주말은 엄연히 다르다. 캠핑은 휴식과 여가의 패러다임이 달라지는, 그래서 가정의 경제와 문화가 달라지는, 가정의 중대사이다. 그러니 잘 살펴야 한다, 전쟁처럼.

전쟁을 살피는 기준에 대해 손자는 5가지를 말한다. 도(道)·천(天)·지(地)·장(將)·법(法)이 그것이다. ‘법’은 나라의 모든 시스템이고, ‘장’은 장수의 덕목이다. 이 둘은 인위적인 조건이다. ‘지’는 땅의 이로움, 곧 전장의 멀고 가까움, 험준함과 평탄함 등을 말하고, ‘천’은 네 계절의 변화에 따른 조건을 뜻한다. 이 둘은 자연적인 조건이다.

손자가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꼽은 ‘도’는 군주의 도리다. 군주가 군주다울 때 백성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각오한다. 객관적 전력이나 자연의 조건보다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는 <맹자>의 이야기와도 통한다.

캠핑은 어떨까. 하늘의 때와 땅의 이로움은 내 의지와 상관없는 것들이니 주어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면 된다. 여름에는 계곡의 시원함을 즐기고, 겨울에는 고요한 설경을 즐기면 그만이다. 지리도 마찬가지. 도심 캠핑장이든 백팩킹으로 가야 하는 오지든 취향과 형편을 따르면 된다.

도와 장과 법이 남았다. 전쟁이 아니라 캠핑이라면 군주의 도리와 장수의 능력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아빠가 군주이자 장수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해 마시라, ‘가장’과 ‘군주’라는 표현은 권력의 의미보다 의무와 책임의 뜻이 강하다. 무엇보다 캠핑을 전쟁에 견준다면, 대열의 선두에 서 캠핑을 몸소 지휘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군주와 장수를 같다고 보면, 결국은 캠핑의 도와 법은 가장의 리더십과 가정의 문화 정도겠다.

마음을 얻어야 캠핑이 순탄하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느냐가 ‘도’ , 아내가 캠핑과 관련된 지출과 시간적 여유를(되도록 흔쾌히!) 허락하느냐가 ‘법’이다. 아이들은 아빠 하기 나름이고, 결재권자인 아내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남편이다. 결국 중요한 건 아내와 아이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2인 3각’의 매듭은 용감하게 자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아내와 아이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내가 원하는 것과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먼저 줘야 한다. 아내는 휴식을 원하고 아이들은 놀이를 원했다. 아내는 나와 아이들의 방해를 받지 않는 완전한 휴식을 요구했고, 아이들은 ‘하지 마라’ , ‘그만 해라’ 따위의 말을 듣지 않는 완전한 놀이를 원했다.

그래서 아내는 나와 아이들이 캠핑하는 동안 집에서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쉬었다. 아이들에게는 캠핑장 도착 전 ‘절대로 다치면 안 된다’는 다짐만 여러 번 받고 어떤 제지도 하지 않았다. 녀석들은 흙투성이 손으로 소시지를 집어먹었고, 차 운전석에서 흙과 물을 무척 창조적으로 가지고 놀았다. 육신은 지쳤고, 가슴 속에서 때로 뜨거운 것이 불끈거렸지만, 마음을 얻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참았다. 그래서 마음을 얻었느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돌아서지는 않았다.

여러모로, 캠핑은 가정의 중대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