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오타발로
에콰도르 오타발로
  • 글 사진 이재선(http://mc800.blog.me)
  • 승인 2013.02.05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빠, 대체 불은 언제 붙는 거야?”
안데스 품에서 곰과 늑대와 함께 캠핑을

▲ 까스까다 데 뻬구체 캠핑장의 텐트 사이트는 피라미드 모양으로 솟아 있다.

머리가 띵해왔다. 양 볼 안쪽은 찢어질 것 같이 아프다가 감각이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오후에 비만 오지 않았어도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것이다. 흐린 날씨 때문에 칠흑 같은 어둠이 성큼성큼 더 빠른 속도로 내려앉았다. 그래, 불이 붙어야 물을 끓일 수 있고 물이 끓어야 식구들이 먹을 수 있다. 나는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작은 불씨에 바람을 훅훅 불어넣었다. 집에 두고 온 가스스토브가 절실히 그리운 순간이었다.

시멘트로 만든 캠핑 사이트
오타발로는 에콰도르 북쪽 적도근처에 있는 오래된 도시다. 인디헤나(원주민)들이 고유의 언어와 전통을 지키며 살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주말 새벽에 열리는 오타발로 재래시장을 찾지만 우리의 선택은 오타발로 캠핑장이었다. 회벽 칠을 한 담벼락을 지나 조금 걸어가니 일주문처럼 생긴 캠핑장 입구가 나타났다. 캠핑장 안내소에 가서 요금을 물어보니 자율적인 기부금으로 운영한다고 했다. 지도를 한 장 얻어서 텐트를 칠 수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데 공기가 무척 맑았다. 역시 이곳도 안데스산맥 자락이어서 나무도 울창하고 숲도 깊었다. 군데군데 화살표를 세워둔 것 같은 모양의 작고 예쁜 방갈로가 있었는데 그 사이로 텐트를 칠 수 있는 캠핑 사이트가 보였다.

▲ 모한다 호수 옆에는 식수대, 캠핑사이트, 전기, 매점 등 아무것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한다 캠핑장이 있다.

보통 우리나라는 사이트가 나무 데크로 되어있는데 여기는 매끈매끈한 시멘트로 만들어졌다. 게다가 생긴 모양도 윗부분을 자른 피라미드 모양이어서 올라가기가 조금 미끄러웠다. 아내가 몹시 궁금해 하기에 괜한 장난기가 발동했다.

“이곳은 산이 깊어서 뱀이나 야생동물들이 야영객들을 자주 습격한대. 그래서 접근하기 힘들도록 이렇게 만든 거야.”
“에이 설마.”
피식 웃던 아내는 이내 안색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모른 척 하늘을 보며 능청을 떨었다.
“어? 빗방울 떨어진다. 빨리 텐트치자.”

그로부터 두 시간동안 우리는 불꽃 하나 제대로 피우지 못해 고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건너편에 자리 잡은 남미캠퍼들도 불을 못 피우긴 마찬가지였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식 불붙이기와 남미식 불붙이기 방법이 좀 달랐다. 우리는 우선 얻어온 작은 불씨 위에 나뭇잎을 태워 잠시 불길이 일어나면, 그 순간에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어 잔가지에 불을 옮겨 붙이는 방식이다. 남미식은 한 사람이 땅에 초 하나를 살짝 묻고 그 위에 잔가지를 올려서 불을 지피면, 또 다른 사람이 주워온 나뭇가지로 불길을 키운다. 하지만 문제는 양쪽 다 마른 나뭇가지가 없어서 불꽃을 키우질 못 한다는 것. 다행히 구세주처럼 나타난 인디헤나 아주머니가 잘 마른 나뭇가지를 한 아름 안겨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날 저녁은 꼼짝없이 굶고 말았을 것이다.

▲ 까스까다 데 뻬구체 캠핑장 내에 있는 다양한 성분의 온천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을 먹기까지는 한 번 더 위기가 있었다. 냄비에 담긴 물이 작은 기포를 보이며 끓기 시작했을 때, 냄비를 지탱해주던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물이 장작으로 쏟아졌기 때문! 덕분에 또 한바탕 불길을 일으키는데 죽을힘을 써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지구 반대편 에콰도르 캠핑장에서 먹는 라면의 맛은 맛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바람소리일까? 짐승소리일까?
어두운 숲을 헤치는 소리가 어지럽고, 커다란 덩치의 곰이 민첩한 동작으로 우리 텐트를 흔들며 냄새를 맡았다. 나는 책에서 읽은 대로 바닥에 딱 붙어 죽은 척할 수밖에 없었다. 곰이 흥미를 잃고 지나가자 이번엔 굶주린 늑대들이 텐트 주위로 다가왔다. 다행히 피라미드의 미끄러운 경사에 발을 헛디디고 제대로 오르지 못했다. 역시 내 말이 맞았어. 밤새 불안한 마음에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새벽아 어서 와라.

▲ 모한다 캠핑장에 머무는 현지 캠퍼가 우리 일행을 보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제 잠 잘 자던데? 난 누가 텐트를 흔드는 것 같아 무서워 죽는 줄 알았는데. 자기는 잠드니까 완전 시체더라.”
아내가 아침부터 시비조다.
“무슨 소리야?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는데.”
“코골면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꿈을 꾸셨겠지.”
결혼 10년차. 목소리 톤만 들어도 안다. 지금은 피해야 할 때다. 주섬주섬 모자를 찾아 쓰고 텐트 밖으로 나왔더니 막내아들이 꺼진 모닥불 앞에서 울상을 하고 있었다.
“아빠, 밤에 또 비 왔어…”

▲ 캠퍼들은 대부분 장작으로 불을 지펴 식사를 준비 한다.

▲ 위도 0°인 적도에서 찍은 가족사진.

위기다. 또 한 번 불 피우는 전쟁을 치른다면 아내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아내는 밥보다 빵을 좋아하니 그래, 아침은 빵이다! 나는 캠핑장 입구에 있는 작은 장터를 향해 번개와 같은 속도로 달렸다. 해발 3000m의 고도에 숨이 턱까지 찼다. 달려가는 숲 사이로 어젯밤 꿈에서 본 곰과 늑대가 피식 웃고 있었다. 니들 오늘 밤 다시 만나면 죽을 줄 알아!



▲ 까스까다 데 뻬구체 캠핑장 입구.

information
에콰도르 오타발로 캠핑장
-모한다 캠핑장
해발 3715m에 있는 모한다 호수 옆에 있는 캠핑장. 식수대, 캠핑사이트, 전기, 매점 등 아무것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무료 캠핑장이다. 산 정상에 있는 호숫가에서의 낭만적인 캠핑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적도에 있지만 고도가 높아서 추우므로 두꺼운 옷을 준비해야 한다.

-까스까다 데 뻬구체 캠핑장
뻬구체 폭포가 유명해서 이름 지어진 캠핑장이다. 잘려진 사각뿔모양의 사이트가 인상적이며 인디헤나들의 움막 같은 방갈로도 운영되고 있다. 사용료는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며 숙박일수에 맞춰 적당한 금액을 입구에 있는 공원관리실에 기부를 하고 사용하면 된다. 노천 온천이 있는데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캠퍼들 대부분이 휴대용 스토브를 사용하기보다 주변 장작으로 불을 지펴 식사를 준비 한다. 캠핑장 입구에 작은 장이 열리는데 그 곳에서 기념품과 먹을거리를 살 수 있다.
오타발로 관광정보 www.visitotavalo.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