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ㅣ 인도 바라나시
TRAVEL ㅣ 인도 바라나시
  • 글 사진 이해선 사진작가
  • 승인 2013.01.28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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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 나마 시바여, 옴 나마 시바여”

▲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 강의 풍경.

오랜만에 다시 찾은 바라나시는 변한 게 별로 없어 보였다. 갠지스 강인 강가(Ganga)는 예전처럼 흘렀고, 좁은 시장 골목에서는 여전히 소들이 길을 막아섰다. 강변으로 이어진 계단 가트(Ghat)에서는 시체가 타고, 힌두 순례자들은 여전히 강물에 몸을 담그며 기도를 했다. 수천 년 동안 바라나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예전과 약간 달라진 것들은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인도인들이 늘었다는 점, 그리고 곳곳에서 한글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장보고 투어’라고 적힌 큰 유람선이 순례자들을 실어 나르고, 가트 옆 벽에는 ‘철수네 보트’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시장 곳곳에는 한국어로
된 간판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인도 청년이 운영하는 ‘선재네 놀이터 멍카페’는 한국인 여행자들로 북적였다. 이제 바라나시는 우리에게 아주 친근한 여행지가 되어 있었다.

▲ 갠지스 강에 이 새를 날려 보내면 시바신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 해가 떠오르는 갠지스 강을 바라보며 횃불을 들고 기도를 하는 브라만 사제.

뱃사공 선재의 보트를 타고 새벽 갠지스 강에 나왔다. 사람과 동물의 시체들이 떠내려가고 그 사이사이를 꽃잎촛불들이 함께 흘러간다. 바라나시에 처음 왔냐고 선자이가 물었다. 1991년에 온 적이 있다 했더니, 그때 자기 나이는 7살, 화장터 근처에서 엽서를 팔았다고 했다. 아! 나도 그때 한 소년에게 엽서를 샀는데, 혹시 당신이? 선자이도 나도 함께 웃었다.

미로처럼 얽힌 시장통에서 한 점원이 서툰 한국말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 고두심을 아느냐고 물었다. 설마! 한국의 유명한 탤런트 고두심을? 그런데 그의 손에는 진짜 고두심과 찍은 사진이 들려 있었다. 내용인즉슨, 고두심이 자기네 가게에서 물건을 샀단다.

그러니 나더러 스카프를 사란다. 참 대단한 인도 상술이다. 소년티를 채 벗지 않은 어린 비구가 화장터에서 수그러들어가는 마지막 불꽃을 응시하고 있다. 사진을 찍지 못하는 나는 어린 비구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 대신 눈에 담는다. 타고 있는 시신은 그의 아비일까? 어미일까? 화장터 사내는 시신을 실어 날랐을 대나무 막대로 잿더미를 함부로 뒤진다. 막대기 끝에 타다 남은 해골 하나 나뒹굴어지자 눈짓으로 비구를 불렀다. 그는 토기 항아리에 해골을 싸들고 강가로 다가섰다.

▲ 순례자들이 갠지스 강변에서 촛불의식을 행하고 있다.

짧은 의식이 행해지고 해골은 비구의 손에 의해 성스러운 강, 강가에 던져졌다. 비구는 그 토기 항아리로 강물을 떠다 남은 불꽃을 마저 껐다. 그리고 화장터를 향해 돌아서서 토기 항아리를 오른쪽 어깨 너머로 던지고 화장터를 떠났다. 날개가 푸른 새 한 마리가 훠이 훠이 소년 비구를 따라갔다.

“새 한 마리 사세요.”
가트에 앉아 있는 내게 사내는 새장을 들이밀었다. 새장 안에는 날개와 꼬리가 푸른 신비한 새가 들어 있었다. 이 새를 떠돌이 여행자인 내가 사서 어디에 쓴단 말인가? 배낭을 메고 새장을 들고 다니는 나 자신을 상상하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긴 한데 새는 참으로 예뻤다.

새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릴컨’이란다. 가격은 300루피, 내 숙소 하룻밤 방값이었다. 새장수 사내는 아예 새장을 내려놓고 내 곁에 앉아버렸다.

▲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기도하는 순례자.
그런데 새장 하나에 한 마리씩만 들어 있는 줄 알았는데 한 마리 밑에 또 한 마리가 깔려 있어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위의 새는 끊임없이 밑에 깔린 새를 쪼아대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필경 깔린 새는 죽고 말 것이다. 사내는 또 다시 새를 사라고 조른다. 여행자인 나 보고 저 새를 어쩌라고?

“이 새를 저 강가에 날려 보내면 시바신의 축복이 있을 겁니다.”
뭣이라! 그럼 저 새들을 잡아와 방생하라는 거였구나. 상술은 괘씸했지만 나는 밑에 깔린 새를 사서 갠지스 강에 날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이 새장수에게 잡히지 말라는 기원과 함께.

두르가 축제가 바라나시에서 열렸다. 두르가는 힌두 여신 가운데 가장 숭배 받는 신이다. 그녀의 역할은 악마들을 물리치는 일이다. 사람들은 이 여신을 수호신으로 받들며 날마다 가정의 안녕을 빈다. 사람들이 1년 동안 각 가정과 사원에 모셔졌던 두르가 여신상을 들고 나왔다. 주황색 옷을 입은 브라만 사제들이 칼춤을 추며 의식을 행한다. 수많은 순례자들과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이 이 의식에 동참한다. 긴 의식이 끝나고 신상들이 제단에서 내려져 행진을 한다. 여성들은 여신의 이마에 장식된 분말을 조금이라도 자신의 머리카락에 묻히려고 아우성이다. 한바탕 춤판이 벌어지고 축제는 막바지에 이른다.

“두르가여 시바여, 두르가여 시바여….”
브라만 사제의 기도소리는 높아만 가고 두르가 여신은 갠지스 강으로 던져진다.
“옴 나마 시바여, 옴 나마 시바여….”

▲ 갠지스 강의 조개잡이 배.

▲ ‘뿌자’라는 기도회에서 브라만 사제들이 횃불을 들고 의식을 행하고 있다.
▲ 기도 중인 사두.

▲ 사람과 동물의 시체가 함께 흘러가는 갠지스 강.

▲ 바라나시 곳곳에서 ‘뿌자’라는 기도회가 열린다.

▲ 축제장에 나온 두르가여신상, 기도가 끝나면 갠지스 강의 품으로 돌아간다.

▲ 두르가축제 때 강물에 던져진 신상의 잔해들.

▲ 갠지스 강변에서 수행 중인 힌두 사두들.

▲ 갠지스 강의 새벽.

▲ 수많은 순례자들이 갠지스 강물에 몸을 적시며 기도를 한다.

▲ 꽃잎촛불로 여행의 안녕을 빌어본다.
▲ 사람들이 일 년 동안 각 가정과 사원에 모셔졌던 두르가 여신상을 들고 나왔다.

▲ 쪽배를 타고 ‘디와’라 불리는 꽃잎촛불을 팔러 나온 아낙. 순례자들은 이 촛불을 갠지스 강에 띄우며 기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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