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호바트 워터 프런트. 요트는 태즈매니아인들의 가장 좋아하는 레저 가운데 하나다. |
여행자라면 누구나 내가 여행하는 곳을 한눈에 보고 싶어 한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캐나다 토론토의 CN타워, 서울의 남산타워가 인기를 끄는 것도 그 때문. 그곳에 올라가면 자신이 여행을 온 도시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 내가 머물렀던 곳을 찬찬히 짚어보면 여정을 이어가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웰링턴 산은 호바트를 한눈에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이 찾는 곳이다. 호바트 뒤편에 우뚝 솟은 이 산은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테이블 마운틴을 연상케 한다. 바닷가 도시 뒤편에 솟아 있는 모양새가 그렇고, 산 정상부가 마치 탁자처럼 평평하게 생긴 것도 그렇다. 높이도 해발 1000m를 훌쩍 넘고, 주상절리를 보는 것처럼 정상의 바위들이 솟아 있는 모습도 닮았다. 날씨가 수시로 변하면서 허리에 구름바다를 끼고 있는 것도 닮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테이블 마운틴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고, 웰링턴 산은 자동차를 타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 독특한 장식으로 실내를 꾸민 자동차. |
웰링턴 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탁월하다. 몇 겹에 걸쳐 뭍이 바다를 품은 곳에 자리한 호바트 전경이 아스라하게 펼쳐진다. 강처럼 깊게 치고 들어온 바다 위로 놓인 호바트 다리나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릴 것 같은 살라망카 마켓도 손에 잡힐 듯이 보인다. 프랭클린 워프에서는 당장이라도 바다로 떠날 기세의 요트 수백 척이 정박해 있는 모습도 손에 잡힐 듯하다. 아니 어제 그곳을 거닐었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반면, 북쪽의 표정은 전혀 다르다. 태즈매니아 내륙을 향해서는 높고 험한 산들이 줄줄이 치달린다. 그 산들이 겹치고 포개면서 내륙으로 사라지는 그 어딘가에 세계 3대 트레일의 하나로 불리는 오버랜드 트랙이 있을 것이다. 또한, 빙하기를 지나면서 산 정상부에 수천 개의 호수가 만들어진 원시의 냄새가 물씬한 필드 국립공원도 있을 것이다.
▲ 살라망카 마켓의 노천카페. 이곳에서 매주 토요일 호바트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이 열린다. |
호바트는 태즈매니아의 주도다. 태즈매니아는 남한의 3분의2 크기 만한 넓이인데, 인구라고 해야 고작 50만 명을 헤아린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호바트에 몰려 산다. 태즈매니아인들에게 호바트는 번화한 도회지나 다름없다. 그러나 여행자들에게 이 도시는 아주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반나절만 뚜벅뚜벅 걸어 다니면 이 도시를 속속들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 태즈매니아에서 모든 물건-농산물을 비롯해 액세서리, 장신구, 풍물 등-이 한 자리에서 난전을 치는 살라망카 마켓과 18세기 영국 조지아풍의 집들이 모여 있는 배터리 포인트, 수백 척의 요트와 피쉬 앤 칩스가 맛있는 캐주얼 레스토랑이 몰려 있는 프랭클린 워프. 사실 그게 전부다. 이것만 보고 나면 다운타운은 다 거닐어본 것이나 진배없다. 하지만, 딱 그만큼이 좋다.
호바트에서 보낸 이틀. 다운타운 구석구석을 거닐었고, 웰링턴 산에서 그 도시를 충분히 훑어도 봤다. 이 도시와 이웃한 해안가의 캠핑장에서 탄산음료만큼 탁 쏘는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아침에 눈을 떴고, 태즈매니아 남부를 대표하는 무리야 와이너리에서 피노 누아와 리슬링 포도로 빚은 와인을 테이스팅하며 태즈매니아 와인의 향기에도 취해봤다. 이번 여행에서 호바트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 정도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 도시에 대한 진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품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여행은, 여행자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
▲ 월링턴 산 정상의 전망대. 이곳에 서면 호바트 시가지를 비롯해 바다가 뭍으로 치고 밀고 들어온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