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SILKROAD ㅣ 이란 에스파한
BEYOND SILKROAD ㅣ 이란 에스파한
  • 글 사진 박하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 승인 2013.01.22 1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의 절반’이 여기 있다

▲ 이맘 모스크의 돔 위에서 바라본 마니렛 풍경

이슬람권 나라들이 몰려 있는 서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오래 전부터 세계를 긴장시키는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최근에만 보더라도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이 그렇고, 아직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해묵은 갈등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종교, 인종 그리고 석유 등등의 문제에서 야기되는 것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지역을 ‘세계의 화약고’라고 말하지 않는가. 또 최근 새로운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이란의 핵개발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평화적인 목적이라고 말하지만, 국제 사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과의 매끄럽지 못한 관계로 그들의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는 게 현실이다.

▲ 사파비드 왕조시대의 체헬소툰 궁전.

도시에 강이 흐르는 축복의 땅
호메이니가 이끌었던 이슬람 혁명 이후 서구편향적인 제한된 정보에 국한하다보니 우리에게는 이슬람 공화국 이란과 그 민족에 대한 이미지가 강성일변도로 각인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란이라는 말이 ‘착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녔듯이 그들이 사는 곳을 가까이서 들여다본다면 사정은 금세 달라질 것이다. 특히 중부의 아름다운 도시 에스파한(Esfahan)에 들르게 된다면 지금까지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이들을 왜 착한 사람들이라고 했는지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에스파한은 이란인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오래 전부터 산에서 물을 끌어다가 지하 수로 카레즈를 이용해 공급하는 방식으로 도시와 마을이 형성된 이란의 다른 지역에 비해 에스파한은 도시 가운데로 강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기 때문이다. 테헤란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인 17세기 사파비드 왕조의 압바스(Abbas) 1세는 에스파한을 수도로 삼고 외국 사신들이 왔을 때 부끄럽지 않은 수도를 만들고 싶었다.

▲ 시오세폴 다리 밑의 카페.

▲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이란 혁명의 지도자 호메이니옹이 그려져 있는 거리의 벽화.

그 야망은 손재주가 좋은 북부의 아르메니아 사람들을 비롯한 많은 예술인들을 불러 모았다. 그 결과 궁전과 일곱 가지 색깔의 타일로 장식된 모스크 그리고 자얀데루드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의 뛰어난 건축미는 이곳 에스파한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 놨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세상의 절반이 에스파한에 있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진정 이곳 에스파한 사람들은 이 말에도 만족하지 못한 듯 “에스파한을 ‘세상의 절반’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 도시를 반밖에 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도시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내는데 서슴지 않는다.

결국 남부의 시라즈 근교에 있는 유서 깊은 유적인 페르세폴리스가 페르시아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라면 이곳 에스파한은 이슬람이 이란의 국교가 된 이후의 다양한 문화상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아라비아 반도에 이슬람이 생겨나고 페르시아로 그 세력권을 넓혀 국교가 된 6세기부터 모스크는 페르시아 건축사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맘 광장
무슬림의 성전이자 가난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쉼터인 모스크는 17세기 에스파한에만 162개나 건설되었을 정도로 건축이 활기를 띠었다. 에스파한의 수많은 모스크 중에서 가장 유명한 모스크는 셰이크 루트폴라(Sheikh Lutfollah) 모스크, 알리가푸(Ali Quapu) 궁전 등과 함께 이맘 광장에 위치해 있는 이맘 모스크이다.

▲ 바자르 한켠에 있는 대장간.

▲ 체헬소툰 왕궁의 벽화.

도시의 중앙 드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이맘 광장과 그 주변의 건축물들. 원 이름은 ‘낙쉐자헌’으로 압바스 1세가 가장 정성을 기울여 만든 곳인데, 귀족들의 폴로 경기가 펼쳐지는 등 일반인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슬람 혁명 이후 오늘날의 이맘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면서 일반인들의 휴식처가 되어 가족 소풍을 나온 이들로 연일 북적된다.

이맘(Emam)이라는 말은 ‘지도자’라는 뜻으로 이슬람을 이끄는 최고 지도자에게만 붙여지는 거룩한 호칭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이 광장은 거대한 직사각형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주변에 정교하게 장식된 높이 40m에 달하는 미나렛과 돔이 돋보이는 모스크와 궁전 그리고 전통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그 조화로움이 가히 이슬람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이맘 모스크는 모스크가 공중전화 찾기보다 쉬울 만큼 흔한 이란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로 명성이 높아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래서 이곳을 ‘이란의 심장’이라고까지 말하는 것일까. 사파비드 왕조 최대의 건축물로 꼽히는 이맘 모스크 안에서 독서 중이던 신세대 차림의 한 젊은이가 말했다.

▲ 차와 물담배를 피우는 전통 카페 입구에 결려있는 토속 물품들.

“우리 이란 사람들에게는 모스크는 단순히 기도만을 드리는 장소가 아닙니다. 고민을 털어놓고 신의 도움을 간구하는 안식처이자 더위를 피해 낮잠을 잘 수도 있는 휴식의 공간이거든요.”

13개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시오세폴
평상시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맘 모스크이지만 막상 이슬람교의 휴일인 금요일이 되면 다소 썰렁해진다. 관광지화 된 이곳 대신 에스파한 시장 끝에 있는 자메 모스크(Jame Mosque)에서 금요 예배가 열리기 때문이다. 금요 집회가 정오와 오후 2시에 한 번씩 열리는 동안 모스크 주변에 설치된 확성기는 코란을 읽는 나직한 음성을 쉼 없이 토해내 도시 전체가 거대한 성전처럼 경건한 분위기로 변한다.

“모든 것은 알라의 뜻이다. 그 알라의 이름으로 오늘을 살지니….”
사파비드 왕조 시대의 건축물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자얀데루드 강을 가로지르는 13개의 다리들이다. 그중에서 에스파한 사람들이 자랑거리로 삼는 것은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하주(Khaju)와 시오세폴(Sio Seh Pole)이다. 특히 ‘33개의 아치가 있는 다리’라는 뜻을 가진 시오세폴은 길이가 300m에 폭이 14m나 되며 하주 다리와 마찬가지로 댐의 역할까지 겸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 아르메니아 교회 입구에서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남성. 이란에서는 주로 남자들이 아기를 돌본다.

▲ 이맘 광장 주변의 한 상점에 진열된 물건들.

▲ 이란·이라크 전쟁 때 희생된 양민들을 순교자처럼 대우하고 있는 묘지.

그 많은 아치마다 불이 켜지는 저녁 무렵 아름다운 외관을 보면 별 일 없어도 그 다리 위를 걷고 싶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으니까. 옛날에는 이슬람교 신자들과 아르메니안 기독교 신자들이 이 다리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종교의식을 가지기도 했다고 하는데, 뭐 지금 그런 것은 없어도 옛날이 따로 없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색다른 문화에 취해가는 이 순간이 바로 변하지 않은 옛날인 듯싶다.

고풍스런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어가는 곳은 다름 아닌 시오세폴 다리 밑에 있는 카페다.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에 그만인 다리 밑 물가에 마련된 이 카페는 특별한 이름이 없이 그저 ‘다리 밑에 있는 찻집’이라고 불린다. 즉, 이들이 말하는 ‘차이하네’인 것이다. 에스파한 사람들의 또 다른 휴식처인 이곳에서는 검정 차도르로 온몸을 둘러싼 여인네들이 차를 마시며 쉬어가기도 하지만, 저녁 무렵 조명 밑 여기저기서 턱수염 수두룩한 남정네들이 지역 특유의 물담배를 피우면서 풍기는 분위기는 분명 영화 속에서나 봄직한 풍경이다. 거기에 어떤 이가 연습이라고 부르는 민요가 생음악으로 더하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 시민들의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는 이맘 광장의 초저녁 모습.

▲ 이맘 광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바자르의 한 기념품 가게.

히잡 여인의 미소에 담긴 긍지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멋스러운 분위기에 잔뜩 기대를 품고 몇 년 만에 다시 와보니 그 카페는 간데없고 조명 아래 강물만 흐르고 있지 뭔가. 무슨 연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애석하기 그지없다. 많은 여행자들의 기억 속에 에스파한의 명물로 자리 잡아 왔던 것인데. 알아본즉 이렇게 없어졌다가도 곧 다시 생겨나기도 한다고 하니까 우선은 지난 기억으로 그 기분을 대신하는 수밖에. 이래서 세상은 자의든 타의든 간에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라고 말하는가.

에스파한의 매력은 이밖에도 여러 군데서 이어진다. 압바스 1세가 접견실로 이용하기 위해 지었다는 체헬 소툰(Chehel Sotun) 내부의 화려한 벽화들과 그 박물관의 소장품들 그리고 페르시안의 꿈을 이어가는 전통 바자르, 온몸을 휘어 감는 히잡을 하고도 불편보다는 문화의 긍지를 말하는 여인네들의 미소, 근교의 소박한 마을들과 천진한 꼬마들까지도…. 이래서 세상의 절반이 이곳 에스파한에 있다고 했던가.

신의 이름으로, 신의 뜻대로 오늘을 살아가는 착한 사람들이 사는 곳. 단호하고 엄격한 율법 위에 자비로움과 사랑을 더한 모습으로 이슬람이 재평가되고 친구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선도하는 앞자리에 찬란한 문화를 간직한 에스파한 사람들이 미소 짓고 있다.
이맘 모스크의 돔 위에서 바라본 미나렛 풍경.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