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슈타인 백작의 안성시대
발트슈타인 백작의 안성시대
  • 글 박성용 기자|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3.01.2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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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음악·와인에 심취한 아티스트 문순우

▲ 다양한 예술을 순례하다가 요리의 세계에 빠져든 아티스트 문순우씨.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기좌리.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들어서자 루돌프 제르킨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이 온몸을 휘감았다. 장려한 선율을 망토처럼 두른 한 사내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눈빛, 형형하다. 목소리, 우렁차다. 간판도 없는 이 성은 그의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음악감상실, 주방, 레스토랑, 사랑방, 카페다. 성주는 아티스트 문순우.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화가, 나이 마흔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 사진작가, 오디오와 재즈 마니아, 요리사…. 지독한 역마살이다. 그러나 탐미주의자는 영혼이 자유롭지 않은가.

▲ 간판도 없는 이 성은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음악감상실, 주방, 레스토랑, 사랑방, 카페다.

“우리는 항상 투어에 목말라 있어요. 사람은 순례를 해야 돼요. 그러면 마음이 정화되고 사람이 변합니다. 한 달 일정으로 유럽 드라이빙 투어를 짜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해지면 캠핑장에서 잠을 자고요. 호텔에서 자면 이게 무슨 순례입니까?”

“내가 유럽에서 살았을 때 놀란 게 뭐냐 하면 민박이 그렇게 잘 돼있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여행을 가잖아, 그럼 빈 집은 게스트하우스처럼 렌탈을 해줘요. 그럼 들어가서 자고 부엌도 쓰고 돈을 놓고 나오는 이런 문화가 참 좋아요.”

▲ 문순우씨가 직접 도화지에 그린 레시피는 하나의 미술작품이다.
▲ 눈길 닿는 곳마다 미술작품들이 진열돼 있다.

다양한 예술을 순례한 그가 최근 정착한 세계는 요리다. 왜 하필 요리일까. 예술과 요리는 어떤 관계일까.

“둘은 동질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 사람에게 똑 같은 재료를 주고 요리를 하라고 하면 백 가지 다른 맛이 나오거든요.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엔 ‘요리가 예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우스웠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요리는 예술입니다. 창작의 개성이 나타나고, 다변화되고, 만든 이의 철학이 묻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요리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요리는 대단합니다. 심성이 어두운 사람에게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는 요리를 해주면 사람이 바뀝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때와 장소에 맞는 음식은 감동을 줍니다. 이 시대를 살면서 가장 큰 화두는 충격과 감동입니다. 이 둘이 아니면 세상과 사람을 움직일 수가 없어요. 복잡한 것에서 얻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삶도 정신도 단순화할수록 최고에 도달하는 것 같습니다.”

알 것 같다. 사람들이 이 성을 자주 찾는 이유를. 자유로운 영혼에서 나오는 그의 거침없는 생각과 말이 헛헛한 마음에 보석처럼 박히는 것 때문은 아닐까. 그가 요리한 음식을 먹으며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가 생각났다. “나는 먹는다는 것은 숭고한 의식이며, 고기, 빵, 포도주는 정신을 만드는 원료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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