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요리사 음식 잡설 ㅣ 오뎅
태양의 요리사 음식 잡설 ㅣ 오뎅
  • 글 사진|박찬일 기자
  • 승인 2013.01.02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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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솥에서 막 튀겨낸 그 맛 잊지 못해

▲ 일본 시장에서 파는 즉석 튀김.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

학교 다닐 때 어머니의 단골 도시락 반찬은 콩자반과 오뎅볶음이었다. 어묵볶음으로 써야 옳은 텐데, 그 시절의 정서가 환원이 안 되어 그냥 ‘오뎅’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요즘은 잘 포장된 자칭 고급(!) 오뎅을 마트에서 사다 먹지만, 옛날만 해도 오뎅이라면 시장통에서 사는 게 당연했다. 시장에서 냄새피우는 가게가 한둘이 아니겠지만, 기름집과 오뎅집이 최강자였다. 기름집은 연신 참깨를 볶고 냄새를 시장 골목에 가득 채웠다.

오뎅집은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놓고 기름을 끓여 오뎅을 튀겼다. 일꾼들이 즉석에서 반죽을 비빈 후 두 장의 금속 도구로 요령 있게 기름에 집어넣으면, 기름솥은 칙칙 소리를 내며 자글자글 끓었다. 일꾼들의 반복되는 익숙한 동작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80년대 초반 시장표 오뎅 사라져
한여름 ‘난닝구’ 차림의 일꾼들이 팔뚝에 기름을 번들번들 묻혀가며 뜨거운 기름솥 앞에서 일하는 장면은 여전히 내 기억에서 선명하다. 그리고 당신이 기억하는 것처럼, 뜨거운 오뎅을 막 베어 물었을 때도 미각 안에 여전히 생생하다. 혀를 데이며 그 놀라운 것을 우물거리며 기름진 것의 안락과 어머니의 지불 능력에 감사하지 않았던가.

굳이 해안 도시가 아니어도 서울의 도매시장에는 제법 규모 있는 오뎅공장이 있었다. 어물전마다 생선을 손질하고 남은 부산물이 리어카에 실려 근처 공장으로 갔다. 온갖 생선 내장과 머리, 뼈가 실려 가던 장면도 기억난다. 아버지는 한동안 오뎅을 안 드셨는데(아마도 생애 마지막까지 안 드셨던 게 오뎅과 라면이었다) 공장을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했다. 딱 한 마디 하셨던 게 기억난다.

“더러워.”

사람들이 좀 살만해지고, 먹는 것에 대해 민감해지던 80년대 초반에 오뎅의 변혁기가 있었다. 아마 카메라출동 같은 데도 자주 나왔던 것 같다. 지저분한 오뎅공장의 끔찍한 위생 상태를 고발하는 장면 말이다. 그 시절부터 동네의 작은 오뎅공장이 문을 닫기 시작한 듯하다. 동네 슈퍼마켓에 텔레비전에서 광고하는 회사의 제품이 진열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부터다. 맛은 훨씬 떨어졌지만 어머니들은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그런 제품들을 집어 들었다. 이른바 시장표라거나 잡표 오뎅의 몰락이었다. 내 미각 역사에서 맛있는 오뎅이 사라지고 듣기에도 맛 떨어지는 어묵이라거나 꼬치라는 이름이 표준어가 된 것과 비슷한 시점일 것이다.

오래 전 우리는 오뎅이라고도, 뎀뿌라라고도 불렀다. 이제 그것을 좀 정리할 때이긴 하다. 오뎅이란 어묵에다가 여러 가지 다른 부재료를 한데 넣고 끓인 음식을 말한다. 다시마와 간장 등으로 양념을 하고 국물이 자작하다. 어묵만을 넣는 게 아니므로 한국에서 오뎅을 국어순화를 한답시고 어묵이라고 부르는 건 말도 안 된다. 한 술 더 떠서 ‘어묵꼬치’라고 부르는 것은 더 엉터리다. 일본에서 오뎅에 재료를 넣을 때 꼬치를 꽂아서 들어가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오뎅에 들어가는 재료는 어묵은 물론이고 달걀, 유부주머니, 곤약, 두부, 감자, 소고기, 소심줄 등 아주 다양하다.

▲ 일본 편의점의 오뎅 냄비. 종류별로 가격이 다른데 심지어 무도 값을 치른다.

길거리 음식이 아닌 일본의 오뎅문화
덴푸라(뎀뿌라)는 에도시대에 서양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 음식으로 딥 프라이(기름을 넉넉하게 잡아 튀기는 방법) 기술이 일본에서 최초로 시작된 요리로 알려져 있다. 어묵과 다른 점은 덴푸라는 해물이나 생선을 손질하여 옷을 입힌 후 튀긴 음식을 뜻한다. 어묵은 일본에서 ‘가마보코’라는 통칭으로 불리고, 모양에 따라 다른 이름이 있다.

가마보코는 생선살을 으깨어 양념한 후 굽거나 튀긴 것을 말한다. 한국의 어묵 이미지가 싼 제품인 것과 달리 상당히 비싼 것들이 많다. 가마보코 달랑 하나에 5,6천 원짜리도 흔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구 같은 흰 살 생선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나가사키 현립박물관에 걸린 그림. 어물전 사내가 어묵을 숯불에 굽고 있다.
일본의 오뎅 문화는 한국처럼 길거리 음식이 아니다. 제법 고급이면서도 오랜 전통을 유지하는 오뎅집들이 있다. 겨울에 성업하는 건 한국과 비슷하지만 사철 문을 연다. 냄비에 끓여서 무슨 요리처럼 받들어 먹는다. 먹는 데도 나름의 규율과 요령을 전수한다. 어묵을 먼저 먹고 곤약과 달걀을 나중에 먹으며, 국물을 들이마시는 게 아니라 가볍게 맛을 보고 주로 건더기를 먹는 것이 오뎅을 먹는 핵심이라는 것도 그렇다.

한국은 국물이 먼저인데 일본에선 대부분 건더기 중심으로 오뎅을 먹는 것이다. 그래서 국물이 짜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맞춤한 간의 국물을 넉넉히 먹는 문화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규슈 지역은 한국과 가까워서 오랜 기간 문화적 소통이 밀접한 까닭인지 한국식 식문화가 꽤 있다. 숙성하지 않은 활어회를 좋아한다거나, 매운 음식도 곧잘 먹으며(한국식 매운 명란이 인기다), 오뎅도 한국식으로 먹는 문화가 있다.

일본에서 오뎅을 간편하게 먹는 법은 식당이 아니다. 오뎅을 취급하는 식당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길거리 포장마차는 더욱 찾기 힘들다. 이때는 편의점에 가면 된다. 대부분의 편의점에서 오뎅을 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겪은 것처럼 스테인리스로 짠 사각의 오뎅 코너가 있고, 마음에 드는 건더기와 국물을 떠서 값을 치르면 된다. 꼬치에 꿴 것은 거의 보기 힘들다. 편의점 안에서 술을 마실 수 없어서 운치는 별로다.

아, 오뎅 국물에 한 잔의 뜨끈한 청주를 마실 수 있는 겨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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