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 점령한 기러기떼 만나다
외도선착장 주변은 올 때마다 풍경이 바뀌는 거 같다. 석모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가니 터미널 시설을 새로 세우고 주차장도 굉장히 넓어졌다. 30분 간격으로 오가는 석모도행 카페리가 막 출발한 참이라 다음 배를 기다리는 동안 선착장 주변 젓갈시장을 구경한다. “새우젓, 황석어젓 사 가요. 맛있어요~” “오토바이에 싣고 가~” 젓갈 파는 아주머니들이 아주 적극적이다.
▲ 석모도행 카페리는 매 30분마다 외포리선착장과 석포리선착장을 오간다. |
▲ 외포리선착장의 젓갈시장은 강화도 특산 새우젓과 황석어젓이 유명하다. |
다시 발길을 되돌려 카페리에 오르자 석모도까지 순식간이다. 두 섬 사이는 바다를 건너기보다는 탁류가 흐르는 강을 건너는 기분이다. 석포선착장을 나서자 곧 갈림길을 만난다. 평소라면 습관처럼 반시계방향으로 달릴 텐데, 이번엔 시계방향을 선택했다. 우선 석모도 최남단에 위치한 어류정항으로 향하다가 전득이고개 근처에서 왼편 바닷가로 빠지는 샛길을 발견했다. 석포리와 매음리를 잇는 전득이고개는 보문사로 가는 최단거리 길이다. 또한 해명산~낙가산~상봉산 연봉을 잇는 등산로 입구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샛길로 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빠르고 편한 길을 추구한다면 라이딩의 참 맛을 얻기 어려우니까.
매음리의 보문선착장은 강화도 선수선착장을 오가는 카페리가 기항하는 곳인데, 웬일인지 입구가 철문으로 굳게 잠겨있다. “곧 석모도에 대교가 건설된다고 하거든요.” 길가 편의점 사장의 말을 듣고서야 궁금증이 풀린다. 외지에서 왔다는 그는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연도교가 놓이면 장사도 더 잘 될 거라며 기대하는 눈치다.
매음리 앞 드넓은 들판은 갯벌을 간척해 만든 염전 반 논이 반이다. 하지만 염전은 갈대와 억새가 무성하게 자라나 폐허나 다름없다. 그런데 저게 뭐지? 어라? 달리던 오토바이를 멈추게 만든 반가운 손님이 있다. 염전과 길 하나를 두고 마주한 들판을 새카맣게 뒤덮고 있는 기러기떼다. 이렇게 많은 기러기를 한꺼번에 본 적은 처음이라 얼떨떨한 기분이다. 이 정도라면 사진가들의 표적이 될 만도 한데 아직 입소문이 나지 않은 모양이다. 바다 쪽 염전은 물오리들, 논바닥에는 기러기들만 찾아든 것도 신기하다. 서로 살아가는 방식과 영역이 다름을 보여준다고 할까?
▲ 매음리와 어류정 사이 들판에 겨울 손님인 기러기들이 찾아들었다. |
▲ 석모도를 비롯한 강화도 일대 갯벌은 보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제419호로 지정됐다. |
기러기떼가 점령한 들판과 어류정항을 거쳐서 자그마한 고개를 넘으면 민머루해변이다. 이 해변은 깨끗한 모래밭이 끝나는 지점부터 자갈이 깔린 갯벌이 시작된다. 물때에 따라서 해수욕장도 되고 갯벌체험장이 되기도 하는 곳이다.
해발 몇 십 미터에 지나지 않는 어류정산은 원래 섬이었다고 한다. 어류정섬과 매음리 사이 갯벌을 간척해 논과 염전을 만들면서 변한 것이다. 해명산~낙가산~상봉산으로 이루어진 본섬과 북쪽 상주섬(산) 사이 갯벌도 간척을 통해 거대한 들판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석모도는 섬 3개가 이어져서 하나의 큰 섬이 된 것이다. 강화도가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간척으로 하나의 큰 섬이 되었듯이, 석모도 역시 비슷한 역사를 가진 셈이다. 다만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를 보면 석모도 일대는 3개의 섬으로 그려져 있다. 따라서 석모도가 간척을 통해 큰 섬이 된 건 그보다 휠씬 후대의 일인 듯 보인다.
TIP 석모도 여행안내 |
관음도량에서 바라보는 황홀한 낙조
석모도를 찾는 이들 대부분은 낙가산에 자리한 보문사를 찾는다. 신라시대에 회정대사가 창건했다는 보문사는 사찰 뒤편 눈썹바위에 마애석불좌상이 새겨져 있다.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1928년에 새긴 것이라고 전해진다. 보문사와 마애석불좌상은 석모도를 대표하는 볼거리로 꼽힌다. 하지만 여기까지 본 뒤 서둘러 집에 가는 이들이 놓치는 것이 있다. 마애불에서 바라보는 서해 낙조다. 마애불의 시선이 향한 바다에 떨어지는 석양은 주변 섬들과 어우러져 황홀한 장면을 연출한다. 과연 서해 최고로 친다는 멋진 낙조여서 눈썹바위까지 땀 흘리며 계단을 오른 보람이 있다. 하늘과 바다에 가득했던 붉은 빛이 걷히자 금세 어둠이 내리고 바닷가 민가에 불빛이 하나둘씩 켜진다.
▲ 눈썹바위를 찾은 커플들의 소망이 전망대 난간에 가득하다. |
다시 산을 넘어와 하리마을로 향한다. 이 저수지는 영화 <시월애>를 촬영했던 곳이다. 둑방에 오르자 하얗게 핀 갈대가 빼곡하다. 저수지 수면이 높아서 저만치 아래로 보이는 바다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하리선착장을 떠난 카페리가 석모도에 딸린 부속섬 미법도와 서검도로 향하는 걸 보며 오토바이 방향을 돌린다.
석포선착장에 돌아와 카페리에 오르자 갈매기들이 모여든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먹이삼아 물고기사냥을 잊은 듯 보이는 녀석들. 석모도에 연도교가 세워지면 없어질 풍경이 아닐까?
TIP 동계 라이딩 노하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