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길 ㅣ 한탄강 얼음길
아름다운 우리 길 ㅣ 한탄강 얼음길
  • 글 사진 진우석 출판팀장
  • 승인 2012.12.20 1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겨울에 열리는 스릴 넘치는 길
직탕폭포~송대소~승일교~고석정…약 5.8km 3시간

▲ 한탄강의 절경인 송대소 주상절리. 여름철에는 접근할 수 없지만, 겨울철에는 강바닥에서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다.

한탄강은 육지에서는 보기 드물게 현무암으로 된 용암대지를 흐르는 강이다. 즉, 과거에 뜨거운 용암이 흐르면서 강이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강변은 수직 절벽과 협곡을 이루는 비경 지대가 많지만, 지형이 워낙 험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한탄강 절경을 구경하기에는 깊은 겨울이 제격이다. 한겨울 강추위 속에서 한탄강이 얼어붙으면 거짓말처럼 길이 열린다. 한탄강 얼음길은 용암과 얼음의 아이러니 속에서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길이다.

▲ 직탕폭포와 고석정 중간쯤에 펼쳐진 주상절리 폭포.
주상절리 절경 펼쳐진 송대소
예로부터 큰여울, 한여울 등으로도 불려온 한탄강은 북한 땅인 평강군의 장암산(1052m)에서 발원해 철원~갈말~연천을 적시고 임진강으로 흘러든다. 한탄강은 화산활동에 의해 생성된 현무암 평원을 굽이도는 거대한 협곡이다. 길이 136km, 평균 강폭 60m의 물줄기가 용암대지 위를 흐르면서 직탕폭포, 고석정, 순담계곡 등의 경승지를 빚어놓았다.

특히 한탄강에 광범위하게 펼쳐진 주상절리는 알려지지 않은 비경인데, 여름철에는 일부가 물속에 잠기기 때문에 그 진면목을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한겨울에 수량이 줄고 얼음이 꽝꽝 얼면 그 길을 따라 용암의 흔적을 둘러보며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한탄강 얼음길은 얼음 상태가 상대적으로 좋은 직탕폭포~승일교~고석정 구간을 걷는 것이 정석이다. 걷기의 출발점은 직탕폭포 앞이다. 겨울철 직탕폭포는 웅장한 얼음 기둥으로 변해 있다. 보처럼 일직선으로 가로놓인 높이 3~5m, 길이 80m의 규모다. 철원 8경 중 하나이며 ‘한국의 나이가라폭포'라 일컫는다. 폭포 앞에서 힘차게 첫 발자국을 찍으며 출발이다. 재미있는 것은 수많은 발자국이 강 한복판으로 나 있다는 점이다. 강물 가장자리에는 용출수 지대가 많아 얼음이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탕폭포를 출발하면 곧 태봉대교 앞이다. 번지점프장이 설치된 빨간색 다리는 눈 덮인 강물과 어울려 더욱 붉다. 태봉대교를 지나자 바닥에서 “쩌엉" 하는 소리가 들리자 주뼛! 머리털이 곤두선다. 소리의 정체는 얼음 사이의 공간에서 울리는 공명이다. 당장 얼음이 깨지는 것이 아니기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 송대소를 지나면 나오는 화강암 지대.

잠시 돌무더기 지대를 통과하니, 앞쪽으로 거대한 벽이 보인다. 다가가니 맙소사! 온통 주상절리다. 이곳이 명주실꾸러미가 끝없이 풀릴 정도로 깊다는 한탄강의 절경인 송대소다. 높이 20m가 넘는 주상절리 절벽이 양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제주도 대포동 주상절리와 닮았다.

주상절리 아래를 자세히 보면 희끗희끗한 곳이 보인다. 그곳은 여름철이면 강물 안으로 잠기는 부분이다. 그 반대편에는 주상절리 폭포가 펼쳐져 있다. 물줄기가 꽁꽁 얼어 거대한 기둥을 만들었는데, 얼음과 절벽의 형상이 마치 태초의 시간처럼 아득하다.

▲ 한탄대교를 지나면 강변의 바위 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한국의 콰이강 다리’ 승일교
송대소를 지나면 강 가운데를 흐르는 강물이 보인다. 반갑다. 그동안 눈이 덮인 탓에 강인지, 산인지 구별이 안 됐다. 이어지는 화강암 너럭바위 지대. 용암이 지표로 나와 흐르다가 굳은 것이 현무암이고, 화강암은 용암이 땅 밖으로 나오지 않고 속에서 그대로 굳은 것이다. 현무암이 거칠다면, 화강암은 표면이 반질반질해서 예쁘다. 넓적한 화강암들이 쌓인 마당바위를 지나면 바위들이 둥그렇게 둘러싼 곳이 나온다. 이곳이 점심 먹기 좋은 장소다. 서둘러 라면 끓일 준비를 한다. 차가운 얼음 바닥에서 후후 입김 불어가며 먹는 라면 맛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 얼음 기둥으로 변한 직탕폭포.

▲ 한탄강 얼음길의 종료지점인 고석정의 고석암.

배를 채웠으면 다시 출발이다. 마당바위 지대를 지나면 한동안 벌판 같은 길을 지난다. 두어 번 강물이 흐르는 곳을 통과하면 승일교를 만난다. 승일교 뒤로는 빨간색 한탄대교가 놓여 있다. 투박한 승일교는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기에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라고 부른다. 1948년 북한 땅이었을 때 북한에서 공사를 시작해 한국전쟁으로 중단됐다. 그 후 한국 땅이 되자 한국 정부에서 완성했다.

결국 기초 공사와 교각 공사는 북한이, 상판 공사 및 마무리 공사는 한국이 한 남북합작의 다리인 셈이다. 다리 이름은 김일성 시절에 만들기 시작해서 이승만 시절에 완성했다고 해서 이승만의 ‘승’자와 김일성의 ‘일’자를 따서 지었다는 설과 전쟁 중에 한탄강을 건너 북진하던 중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박승일 대령의 이름을 땄다는 설이 있다.

▲ 강물과 얼음이 어우러진 길은 묘한 울림을 준다. 송대소에서 승일교로 가는 길.
한겨울 고석정의 절경
잠시 승일교에 올라 한탄강을 내려다보자 웅장한 모습이 드러난다. 한탄강은 평야 지대에서 20~30m 아래로 깊게 패어 들어갔고, 그 양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웅장하게 둘러섰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탄강을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부르기도 한다. 협곡 아래 얼음 위를 걷는 사람들이 마치 개미처럼 작게 보인다. 다시 강으로 내려가 승일교의 우아한 아치형 곡선을 통과하면 기기묘묘한 화강암들이 널려 있다. 이곳은 수심이 깊은 지역이라 바위들을 타고 넘는 것이 안전하다.

한탄대교가 점점 멀어지면 시나브로 고석정이 가까워진다. 고석정은 한탄강변의 작은 정자 이름이지만, 오늘날에는 그 일대의 빼어난 풍광을 통틀어 일컫는다. 고석정 일대의 절경을 두고 고려 때 무외(無畏)라는 스님은 이런 글을 남겼다.

“철원군 남쪽 만보쯤 되는 거리에 큰 바위(고석암)가 우뚝 솟은 고석정이 있는데, 높이는 거의 3백 척이나 되고 둘레는 십여 길이나 된다… 또 큰 여울이 굽이쳐 흐르며 벼랑에 부딪치고 돌 굴리는 소리가 여러 악기를 한꺼번에 연주하는 것과 같다. 고석바위 아래에는 깊이 팬 못(淵)이 있어 내려다보면 다리가 절로 떨리고 그 속에는 신물(神物)이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조선 명종 때는 임꺽정이 험한 지형을 이용해 이 정자의 건너편에 석성을 쌓고 은거하면서 의적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석정의 풍광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한탄강 중앙에 자리한 12m 높이의 고석암이다. 이를 강바닥에서 바라보니 고석정에서 본 것보다 열 배는 웅장하다.

고석암을 손으로 직접 만져보니 감개무량하다. 한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한탄강 얼음길의 황홀한 걷기는 고석암에서 마무리한다. 걷기를 마치고 고석정에 올라 한탄강을 내려다본다. 앞쪽으로 눈부신 역광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순담계곡이 어서 오라고 유혹한다.

▲ 뒤로 빨간 태봉대교가 눈과 어울려 강렬한 인상을 준다.

▲ 소복하게 눈이 덮인 바위들.

▲ 승일교 아래를 지나는 걷기꾼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