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SILKROAD ㅣ 아프가니스탄 헤라트
BEYOND SILKROAD ㅣ 아프가니스탄 헤라트
  • 글 사진 박하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 승인 2012.12.18 17: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마르 노 굿!”

▲ 자마 마스지드 모스크가 보이는 석양 풍경.

아직 초저녁인데 시가지는 몇 개 불빛을 제외하곤 온통 암흑이다. 그 암흑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강한 어조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져나가고, 군데군데 모여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따금 차갑게 빛나는 물체가 있다. 바로 총이다. 밤이 되어 일찍 끊어졌는지 차량 통행도 거의 없다.

이런 음산한 분위기에 휩싸여 택시기사가 데려다준 곳은 외신기자들만 묵고 있는 한 호텔이다. 그런데 이 호텔 역시 부르는 게 값이다. 덩치만 크지 형편없는 시설에 터무니없는 요금을 달러로 요구한다. 별 수 있나. 전쟁 중인데….

지난 2001년 탈레반과 미국 간의 전쟁이 한창일 때 도착한 아프간 서북부 도시 헤라트(Herat) 분위기다. 아직도 거리 곳곳에서 실크로드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도시는 갖은 내전과 외세의 침입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졌지만 그 속에서 버텨온 사람들의 눈망울은 순수 그 자체다.

▲ 바알베리라 불리는 주식인 빵가게에서.

▲ 극심한 인플레로 생활용품 하나 살 때도 지폐를 저울에 달아야 한다.
전쟁놀이 같은 포로수용소
헤라트에서 가장 큰 모스크인 자마 마스지드에서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중무장한 민병대들이 사주경계를 삼엄하게 펼치고 있는 가운데 넓은 모스크 안마당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이곳의 최고 지도자인 이스마엘 한을 비롯해 지도급 인사들이 뜻을 모아 탈레반 정권이 떠난 현 시국을 수습하기 위한 비상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탈레반 정권의 핵심인 파슈툰족의 압제에서 벗어난 이곳 타지크족을 비롯한 북부민족들은 해방감 속에서 세상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아직 드러나지 않고는 있지만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고 신속하게 대처하는 기회주의자들이 이곳에서는 어떻게 취급되는지 궁금해진다.

시내 중심에 탈레반 포로수용소가 있다. 아마춰 에브라함이이라는 젊은이가 자진해서 안내를 한다. 타지크족인 그는 헤라트는 투르크메니스탄과 가까워 투르크족들도 많다고 했다. 탈레반 정권에 대해 물었더니 손을 내저으며 하는 말이 “오마르 노 굿!”이다. 오마르는 탈레반 지도자를 말한다. 미국에 대해서도 물으니 좋다, 싫다는 말없이 얼마 전 미군 미사일이 이 근방에 떨어져 자기 집 유리창이 몽땅 깨졌다고 한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수용소는 자동소총과 영화에서 자주 본 러시아제 RPG-7이라는 로켓포로 무장한 무자헤딘들이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다. 취재 허가서를 보이고 잠시 수속을 기다리고 있노라니 차량 한 대가 오더니 웅성거리는 사람들 가운데 한 무리의 사람들을 퍼놓는다. 탈레반 포로들이다.

수갑이나 포승줄도 없고, 그들을 향해 총을 겨냥하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겉으로 보기엔 누가 탈레반 포로이고 누가 북부동맹군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어디에서 붙잡혀온 자들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소 상기된 표정이기는 해도 겁에 질려 보이지는 않았다. 북부동맹군들도 그들을 동네 친구들 다루듯 하면서 몇 가지만 물어서 적고 그대로 수용소 안으로 밀어 넣었다. 무슨 전쟁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 탈레반이 떠난 해방감에 들떠 거리로 나가는 여인들.

굶주림과 추위에 떠는 난민촌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추워지기 시작한다. 총을 든 무자헤딘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곳은 관공서가 아니면 주요 시설이다. RPG-7 로켓포탄을 장식처럼 매달은 소형트럭들이 돌아다니고, 택시 안에도 총을 가진 무자헤딘들이 빽빽이 앉아 있다. 마치 광주 5·18 현장을 다시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이렇게 많은 무자헤딘들이 여기저기 움직이고 있는 것은 탈레반과 한창 교전 중인 칸다하르 일대로 지원 보낼 병력 5천명을 모으고 떠날 준비 때문이다. 많은 병사들의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곳에서는 라마단 기간이라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있던 병사들이 먼저 배식을 받으려고 야단법석들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이곳 헤라트의 근교 두 곳에 난민촌이 있다. 동쪽 난민촌은 마슬락에, 서쪽은 쉐이데이라는 곳이다. 이 난민촌이 어제오늘 생긴 것은 아니지만 마슬락에는 최근 사태로 몰려든 난민들이 상당수 있다. 이들 중 천막을 가진 일가도 있지만 대게 노천에서 온가족이 웅크리고 앉아 변변치 않은 이불만으로 추위에 떨면서 구호단체에서 나누어주는 식량으로 연명하고 있다. 이제 전쟁이 거의 끝나가고 있어 하나 둘 다시 돌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갈 곳이 없는 많은 피난민들이 허허벌판에서 떨고 있다.

반대편에 있는 쉐이데이 난민촌은 사정이 좀 나아 보인다. 노천에 내몰려 있는 사람들도 없고, 급식도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고 실시되고 있다. 라마단 기간이지만 오전부터 어린이들에게는 급식을 한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각종 깡통과 세숫대야 같은 그릇들을 들고 추위에 떨면서 줄을 선다. 수수, 옥수수, 밀가루 등이 혼합된 죽은 아무 맛도 없다.

▲ 미군의 미사일이 떨어져 초토화가 된 탈레반 군부대.

▲ 풍장 형식으로 시신을 난장에 놓아둔 모습.

어딜 가나 조심하라는 발목지뢰
먼 산 밑에 장갑차의 잔해들이 널려 있다. 자갈투성이의 사막을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가니 언제 무슨 전투에서 어떤 무기의 공격에 망가졌는지 몰라도 다섯 대의 장갑차들이 버려져 있다. 산 위에서 쏜 로켓포의 공격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그런데 문제는 그곳에서 돌아오는 것이었다. 올 때는 뭘 모르고 왔는데 근처를 지나는 한 노인이 발목지뢰가 많다고 몸짓으로 알려줬기 때문이다.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여간 긴장되는 게 아니었지만 어쩌겠는가. 모든 게 운명이러니….

▲ 왕비의 무덤과 거대한 미나렛이 보이는 풍경.

헤라트 동쪽 외곽에 탈레반 군대가 주둔했던 군부대가 있다. 이 부대의 주요 시설에 미군이 미사일 세례를 퍼부었다. 미사일이 떨어진 곳은 그야말로 쑥대밭이었다. 다섯발의 미사일이 떨어진 곳은 각각 반경 5~10m정도의 커다란 웅덩이가 생겼다. 그 주변에는 탱크, 대포, 각종 차량 등이 부서진 채 흙속에 처박혀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탄약들이 수도 없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미사일이 병기고를 명중한 것 같았다.

수 백 미터 떨어진 곳까지 파편이 튀어서 민간인들까지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아직 터지지 않은 포탄들도 아직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경비병들이 무단 침입한 나를 보고 다가왔다. 한판 곤욕을 치르게 생겼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발목지뢰가 많으니 조심하라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사진을 챙기는 것보다 그저 찍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 헤라트 관공서 앞에 몰려든 난민들.

뜨거운 바자르 열기
전쟁과는 상관없다는 듯 이곳 바자르의 열기는 뜨겁다. 눈에 보이는 게 모두 옛날 실크로드의 전설을 말해준다. 부르카를 뒤집어쓴 여인네들이 타고 가는 멋들어진 마차가 그렇고, 망치소리가 음악처럼 들리는 대장간이, 또 ‘난’이라는 커다란 빵들의 고소한 냄새가 그렇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플레가 심해서 이곳 화폐인 아프가니스가 휴지가 됐다. 과일을 몇 개만 사도 지폐를 한참 세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돈을 저울로 달기도 하고, 어린이들이 한 다발의 돈뭉치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보통이다. 그래서 인접국인 이란 돈인 리알이 더 인기다.

눈이라도 내릴 듯 날씨가 잔뜩 찌푸린 날이다. 전쟁으로 어수선해진 분위기가 머지않아 제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전쟁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의 희망이지만 인간이 있는 곳에 전쟁은 항상 있는 법이다. 하지만 과거 실크로드의 화려한 영화를 간직한 이 헤라트가 또 모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전쟁의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알라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