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packing ㅣ 영남알프스 ⑥Epilogue
Backpacking ㅣ 영남알프스 ⑥Epilogue
  • 글 박성용 기자|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2.12.14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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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리면 영남알프스는 거대한 신전으로 변한다. 신전으로 들어가는 관문 간월재에서 텐트를 쳤다. 신전에 어둠이 주둔하는 동안 텐트는 작은 불빛에 지나지 않는다. 그 불빛에 기대어 바라보는 저 어둠 너머의 고원은 거대한 피아노. 억새꽃들이 흰 건반처럼 꽂혀 있다. 어둠과 억새꽃을 번갈아 타건하며 바람은 야상곡을 풀어낸다. 그 선율은 광포하다가도 어느 순간엔 여린 노래로 바뀌곤 했다.

우리는 그 무엇이 허기져 이토록 높은 데까지 올라 왔을까. 강줄기처럼 흘러가는 산 아래 도시의 불빛이 희미해지면 그 허기를 채울 수 있을까.

밤이 깊을수록 머리맡에는 식은 달빛이 쌓여갔다. 좁은 텐트 안에서 몸을 뒤척일 때마다 수시로 음표를 바꾸는 저 소리는 무엇일까.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지고 새벽녘 누군가 잠결을 파고든다고 느꼈을 때 텐트를 들추고 들어온 한 줄기 바람.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신전의 주인이라고 말했을 때, 밤새 들었던 그 소리는 우리의 허기진 내면이 일으킨 변증법의 과정일 뿐 그 어떤 노랫소리도 울음소리도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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